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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닥칠 현실 당긴 '미키17'…봉준호 "부부 독재할 때 이상한 시너지"

할리우드 영화 '미키 17'으로 6년만에 복귀한 봉준호 감독을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만났다.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영화제, 프랑스 파리를 거쳐 막 귀국한 그는 시차적응을 위해 ″오늘만 에스프레소 7잔을 마셨다″고 했지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들뜬 어조를 감추지 못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지금도 실제 ‘휴먼 프린터’(인간 출력기)를 만드는 회사가 있어요. (영화처럼) 인체 세포가 아닌 유기질 재료를 넣어서 귀 일부, 피부 조직 프린팅에 성공했거든요. 2054년(영화 배경)엔 정말 우리 형제·자매가 출력될지도 모릅니다.”

봉준호(56) 감독에게 할리우드 SF ‘미키 17’(28일 개봉)은 “곧 닥쳐올 현실”을 앞당겨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은 외계 식민지 개척선의 유일한 소모품(익스팬더블) 노동자 미키(로버트 패틴슨). 우주 방사능에 노출되면 얼마나 빨리 죽는지, 얼음 행성의 공기에 독성이 있는지 등을 알아보는 위험한 임무를 도맡다가 사망 시엔 몸뚱이를 재출력한다. 기억만 그대로 보존한 채로다. 제목의 숫자 17이 바로 그가 재출력된 횟수.



2054년 죽음의 고용 계약 내몰린 청년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SF 영화 '미키 17'. 위험한 임무 중 죽으면 재출력되는 처지에 익숙해진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용광로에 산 채로 폐기될 때조차 “아임 파인, 땡큐(I’m fine. Thank you‧괜찮아, 고마워.)”란 예의바른 태도로 일관한다. 이런 블랙 코미디가 씁쓸한 웃음을 유발한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말 그대로 '죽음의 고용 계약'에 동의한 처지라, 누구도 그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현실 사회 위험의 외주화를 노골적으로 연상시키는 설정이다. 봉 감독이 직접 각본을 겸해, 미국 원작 소설 배경을 "더 가까운 현실로 끌어왔"다.

그런데 전반적인 영화 톤은 우화적 유머가 감돈다. 청춘 남녀의 로맨스(심지어 사각 관계다)를 펼친 것도 그의 영화론 이례적. 무엇보다 결말마저 정치‧사회를 향한 낙관론을 제시했다. 앞서 베를린국제영화제(갈라 스페셜 부문) 공개 후 할리우드에서 만든 SF 전작 ‘설국열차’(2013)와 ‘옥자’(2017)를 합친 듯하다는 평이 나올 만큼 봉준호 영화의 인장이 뚜렷하지만, "전작보다 희망적"(뉴욕 매거진)이란 반응이 공존한다.



"그간 영화 주인공에 가혹…원작 속 사랑에 울었죠"

1980년대 군사정권 시대상을 새긴 형사물(‘살인의 추억’), 386세대와 한·미 관계를 은유한 괴수 액션(‘괴물’), 신랄한 계급 풍자(‘기생충’) 등을 만들어온 사회파 거장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일까. 유럽(런던‧베를린‧파리) 홍보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봉 감독을 19일 서울 여의도 호텔에서 만났다. 영화 말미 미키가 꾸는 악몽이 오히려 그간 봉준호 영화 속 현실적인 결말답게 느껴졌다고 말하자, “해피엔딩을 보고도 못 믿었단 말이냐, 너무한다”고 농담조로 운을 뗀 그가 진짜 속내를 털어놨다. “그동안 내 영화가 현실의 쓰라린 모습을 풍자하다 보니, 주인공들을 가혹하게 대했어요. 미키한텐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화 '미키 17'에서 우주 개척선의 최정예 요원인 나샤(나오미 애키, 왼쪽부터)와 미키 커플. 봉준호 영화 중 처음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손해를 봐도 웃기만 하는 이 착해 빠진 청년이 이미 17번이나 죽었는데 또 죽게 하고싶지가 않았다는 얘기였다. 원작에서 인간의 짓밟힌 존엄성을 상징하는 '휴먼 프린팅' 개념과 함께 "절대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게 바로 미키의 사랑 이야기였다. 최정예 요원인 여자 친구 나샤(나오미 애키)가 미키를 어떻게 지켜주는가. 이를 묘사한 대목을 읽다 말고 눈물까지 흘렸단다.

미키의 세계를 구하는 것도 나샤의 사랑이다. “나샤의 순수하고도 상식적인 마음과 정치가 어긋나지 않는 것. 그런 게 좋은 정치 아닐까요.”



"과거에도 부부가 독재할 때 이상한 시너지"

영화엔 세상을 망치는 사랑도 나온다. 외계 개척선의 독재자 마셜(마크 러팔로)과 그 아내 일파(토니 콜렛)다. 지구에서 실패한 정치가인 마셜은 화려하고 자기 과시적이지만, 사실 아내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일파는 원작에 없던 캐릭터를 봉 감독이 새롭게 빚어낸 것. 홍보차 방문하는 나라마다 자국의 정치가 부부가 연상된다는 이가 많았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봉 감독이 비상계엄 후 탄핵 지지 성명에 동참한 것도 이런 해석을 불러냈다.
영화 ‘미키 17’에는 외계 행성 개척단의 독재자 부부 역의 마크 러팔로(사진 오른쪽)와 토니 콜렛(왼쪽), ‘옥자’에 출연한 재미교포 스티븐 연 등 할리우드 연기파 스타들이 출연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날 “대통령 선거 이전인 2021년 시나리오를 탈고해 촬영을 2022년 마쳤다”고 거듭 강조한 봉 감독은 “독재자 캐릭터가 끔찍하면서도 우스꽝스럽고 매력 있어야 했다. 과거에 부부가 독재할 때 이상한 시너지가 있더라”며 역사적 사례를 들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부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부부 등이다.

영미권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상 영화로 주목받았다. 극 중 마셜이 총살 시도에서 살아남는 장면이 지난해 대선 유세 중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촬영 당시 마크 러팔로와 한국‧미국 정치가들을 서로 휴대폰으로 보여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모두 과거의 정치가들이었다. 작년에 그 사건(트럼프 저격 미수)이 있은 후에 저희도 신기하다는 얘기는 했다. 영국에선 '봉 감독 집에 미래를 보는 수정공이 있냐'는 질문까지 받았다”고 그는 돌아봤다. 또 “이탈리아에선 마셜한테서 무솔리니를 보더라”면서 “각 나라의 정치적 스트레스를 투사해서 보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영화사가 빼자던 그 장면, 되풀이 정치사 악몽에 담아

외계 얼음 행성 원주민 '크리퍼'들의 끈끈한 동족애도 부각했다. 인간들은 미키에게 죽을 만한 임무를 몰아주곤 누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지만, 크리퍼들은 인간에게 납치당한 아이를 구하려고 다 같이 쏟아져 나와 평화적인 시위를 한다. 인간 사회의 한심한 모습을 대비하기 위한 설정이다.
인류 정치사에 반복돼온 악순환을 "다크한 단편영화처럼 강렬한" 악몽 장면에 담은 것도, "이 악몽을 극복하지 못하면 언제든 우리가 다시 (한심한 모습으로)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인상을 확실히 남기고 싶어서다. 스튜디오(워너브러더스)에서 빼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제가 거절했다"고 봉 감독은 설명했다.

실제 그의 정치적 관점과도 연관되는 연출이다. 전날 방영된 MBC 시사 프로 ‘시선들’에서 "12·12 군사반란을 초등학교 4학년 때 겪었는데 우리 세대가 생애 다시 한번 계엄령을 겪으리라고는 상상 못 했다. 황당했다"고 밝힌 그는 20일 마크 러팔로,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과 함께한 내한 간담회에선 "다행히 일상은 계속됐고, 국민은 계엄을 극복했다. 남은 건 법적·형식적 절차"란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면 지하철역에서 나와 주택가 골목을 걸을 때 어떤 냄새가 나는지, 행인들의 디테일까지 머릿속에 떠오르죠. 다른 언어권 무대의 작품은 조사하고 상상하며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SF처럼 우화적인, 약간 추상화하거나 직설적인 이야기를 해버려도 상관없는 장르에 더 의지하고 싶어지죠. 그게 SF의 재미이기도 하고요."



"2054년도 시나리오 쓸듯…이상한 감독으로 기억되고파"

지난해 9월 공개된 영화 '미키 17' 1차 예고편 한 장면. 극 중 티모(스티븐 연, 사진)가 조난당한 미키를 구해주지 않고 "자알 죽고, 내일 보자!"고 인사한다. 영화의 잔혹한 블랙코미디를 압축한 장면이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이후 세계적 거장이란 명성에 대해 그는 “세계 제패란 표현은 차범근 선수,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손흥민 선수나 방탄소년단(BTS), 로제 같은 분들이 더 맞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차기작은 심해어를 소재로 한 그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 서울 배경의 실사 공포 액션 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미키 17’의 배경인 2054년, 85세 노인이 됐을 자신을 이렇게 상상했다.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기계 몸을 장착하고 계속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184번째 영화까지…. 좀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계속 기억되고 싶습니다.”
지난달 먼저 내한한 로버트 패틴슨에 이어 20일, 봉준호 감독과 배우 나오미 애키, 마크 러팔로, 스티븐 연, 최두호 프로듀서(왼쪽부터)가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미키17' 내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나원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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