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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나쁜 사마리아인’의 보호무역, 트럼프 후에도 계속된다

트럼프의 관세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
서경호 논설위원
# 나쁜 사마리아인=“오늘날 부자 나라 사람들 가운데는 가난한 나라의 시장을 장악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경쟁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설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며 ‘나쁜 사마리아인’처럼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다.”

장하준 영국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의 2007년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한 대목이다. 영국과 미국은 자유무역의 발상지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보호주의적인 나라였고, 보호 관세와 보조금 정책을 사용하지 않고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으며, 부자 나라들은 자신들의 성공 비결인 보호무역 대신 개발도상국에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식으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부자 나라 정부들의 협력체인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WTO)라는 ‘사악한 삼총사’는 신자유주의 강령을 설파하는 수단으로 지목됐다.

미국은 내수시장이 협상 무기, 시장 작은 한국은 규칙수용자
트럼프 발언은 실행 가능한 것과 아닌 것을 나눠서 분석해야
통상전문가 한덕수 총리 활용론…차분히 지켜보는 전략 필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전쟁이 시작된 2025년 이 책을 다시 보면 혼란스럽다. 개도국에 자유무역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미국 스스로 강력한 보호무역을 천명한다. WTO를 무력화하는 것도 미국이다. 미국은 WTO 상소 기구에 자국 할당 판사를 임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WTO 분쟁 조정 기능을 사실상 정지시켰다. 장 교수도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2017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1기의 보호무역에 대해 “원론적으로 선진국은 자유무역을 하고, 후진국은 유치산업 보호 등을 위해 보호무역을 해야 한다”라며 “미국이 세계화의 피해자라며 보호무역을 하겠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보호무역과 제조업 육성을 위한 산업정책 등 개도국 경제 발전을 위한 장하준의 조언을 ‘나쁜 사마리아인’의 대표격인 미국이 앞장서서 따른다. 한국처럼 미국과 무역을 많이 하는 나라 입장에선 나쁜 사마리아인이 더 나빠진 것 같다.

차준홍 기자
# 그래도 미국은 룰 메이커(규칙 제정자)=“영어, 달러, 시장이 미국의 힘이다.” 전직 경제부처 장관의 평가다. 그는 특히 미국 시장이 소비 수준 높은 세계 최대의 자유시장이라고 했다. 이는 경영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가 2001년 쓴 『보이지 않는 대륙』에서 플랫폼을 강조하면서 했던 말이다. 저자는 미국의 오늘이 있게 한 플랫폼으로 인터넷 공식 언어인 영어, 기축 통화이자 국제 무역의 결제수단인 달러, 주식 시장과 각종 상품거래소를 포함한 자유롭고 개방된 거래공간(시장)을 꼽았다. 트럼프가 미국 시장에 접근할 권리를 특권(privilege)이라고 생각하고 관세를 휘두르며 ‘부담되면 미국에 공장을 세워라’고 강짜를 부리는 것도 미국 시장의 매력 때문이다. 아담 포젠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이 말한 대로 “미국은 이제 포트리스 아메리카(Fortress America)”, 관세로 장막을 친 요새가 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2위 수출 대상국이다. 지난해 전체 수출의 18.7%인 1278억 달러를 미국에 수출했다. 반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수입액은 721억 달러, 전체 수입의 11.4%(2위)였다. 미국은 시장 자체가 협상무기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 하다. 내수시장이 크지 않아 주요 교역상대국의 대 한국 수출 비중이 작다. 한국이 독자적 무역보복 조치를 취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국은 적어도 미국과의 양자 간 통상 이슈에서 룰 테이커(규칙 수용자)일 때가 많다. 미국의 룰 메이커(규칙 제정자) 지위는 여간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 통상 변호사의 조언=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은 끊이지 않는다. 미국에 오는 모든 수입품에 매기는 보편관세, 특정 국가 수입품에 매기는 국가별 관세, 특정 수입품을 겨냥한 품목별 관세,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상호관세까지 이어지면서 ‘관세 4종 세트’라는 조어까지 국내 언론에 등장했다. 상호관세는 관세율뿐 아니라 부가가치세까지 포함하는 모든 비관세장벽을 따지겠다고 했다. 18일(현지시간)에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 반도체와 의약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트럼프가 재확인했다. 자동차(대미 수출의 27.2%)와 반도체(8.4%)는 지난해 한국의 대미 수출 1, 2위 상품이다.

19일 경기도 평택항 부근에 수출용 차들이 세워져 있다. 지난 1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 반도체와 의약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서 관세가 최소 25%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트럼프의 관세 압박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여기저기 총 쏘듯이 나오는 트럼프의 관세 발언에는 실현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다”며 “실현 불가능한 것까지 피하겠다고 비용을 지불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우선 보편관세와 상호관세는 개념상 양립할 수 없다. 미국에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일괄적으로 관세를 매기면(보편관세) 동종 상품에 대해 원산지마다 관세를 달리 매길 수(상호관세)는 없다. 상호관세는 지난 80년간 유지된 GATT(관세·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와 WTO 체제의 최혜국대우(MFN) 조항을 무시하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예외가 없는 한, 동종 상품 관세율이 나라마다 달라서는 안 된다는 게 최혜국대우 원칙이다. 더 중요한 건 상호관세가 미국 경제 자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송 변호사는 “무역 상대국의 무역장벽을 핑계로 동종 상품에 관세를 다르게 매기면 미국이 비용을 가장 절약할 수 있는 경제적 구매를 못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상호관세를 실행하려면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특히 반도체는 정보통신기술협정(ITA)에 따른 무관세 대상이다. 한국의 반도체는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부가가치가 큰 디자인과 패키징 등을 맡은 미국의 핵심이익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 반도체 관세가 모든 산업의 경쟁력을 직접 침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관세화를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송 변호사는 예상했다.

산업연구원이 17일 발표한 ‘미국 우선주의 통상정책의 주요 내용과 우리의 대응 방향’ 보고서에는 트럼프의 관세 전쟁이 한국 주력산업의 기회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반가운 대목이 있다. 한국은 미국의 다른 무역적자국에 비해 상품 시장의 개방도가 높고, 환율 조작, 수출상품 부가세 환급, 직·간접 보조금, 수입 제한 등 ‘불공정 무역행위’ 수준이 낮은 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미국의 다른 수입국 관세율이 한국보다 더 높게 설정되면 관세를 맞더라도 한국 수출품의 미국 시장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경제학자들은 대부분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에 비판적이다. 관세는 미국 물가를 올리고 국제무역을 위축시키며 제조업 공급망을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부작용이 커지면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예봉이 꺾일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가 많다. 하지만 전직 통상관료는 전혀 다른 분석을 내놨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고립주의 시기가 더 길었다. 규칙 기반의 국제통상은 최근 수십 년에 불과했다. 지금의 트럼프가 미국의 노멀(normal)이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기거나 향후 대선에서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기껏해야 ‘착한 트럼프’ ‘점잖은 트럼프’로 바뀔 뿐이지,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는 달라지지 않을 거다.”

통상법 전문가인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미국 민주당이 나중에 정권을 다시 잡아도 속도 조절은 있겠지만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중국·동맹국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고 국제교역 질서를 재편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이미 오바마 정부 후반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미국이 예전처럼 WTO로 상징되는 다자주의로 복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지금 같은 통상 전쟁이 오래 간다면 대책이 있어야 한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이 불가능하고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대외정책을 펴고 있지만 비즈니스 거래에 익숙한 인물이라서 정치적 리더십만 제대로 서 있으면 한국에도 기회가 많다”고 말했다. 조선 분야 협력을 비롯해 양국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는 “통상과 외교도 결국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며 “지금 워싱턴에 통할 수 있는 사람으론 주미 대사를 지낸 통상전문가 한덕수 총리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총리(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심판을 서두르고 탄핵이 기각돼야 한 총리는 복귀할 수 있다.

이재민 서울대 교수도 국내 리더십 부재 상황을 답답해했다. 그는 “최고위급 레벨의 논의가 중요하지만 장관급, 국장급, 실무자급에서도 양국이 논의할 게 많다”며 “실무자 레벨에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국이 원하는 것, 양보할 수 있는 것, 양보 못 하는 것에 대한 미국과의 공감대를 쌓고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지난해 12월 본지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거래를 위한 ‘코리안 오퍼’를 준비하되 ‘호들갑 떨지 말고 차분히 지켜보는(Wait and See)’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 원장은 “트럼프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며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대비하되, 행여나 욕속부달(欲速不達, 서두르다 일을 그르침)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경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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