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현지화·전문화·운동화…글로벌 NGO의 세 가지 지향점
김혜경 지구촌나눔운동 이사장 인터뷰
김혜경(69) 지구촌나눔운동 이사장은 30년 전 국제구호개발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순간을 떠올렸다. 1980년대를 미국에서 보내고 1991년 귀국한 김 이사장은 한국의 빈부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경실련에 합류했다. 중국 출장은 전 세계 빈곤 문제에 눈을 뜨게 된 계기였다. “한국은 여러 나라의 원조를 받아 빈곤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다른 나라에서는 빈곤층 여성들이 홍등가로 팔려 가고, 극심한 굶주림과 폭력에 노출돼 있었습니다. 이제 한국이 역할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경실련 이름으로 ‘한국의 ODA(공적개발원조) 예산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3년 후, 같은 뜻을 가진 시민사회 인사들과 뜻을 모았다. 1998년 12월에는 ‘지구촌 가난한 이웃의 자립을 돕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한다’는 사명을 가진 국제구호개발 NGO 지구촌나눔운동을 창립했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올해로 28년째 베트남·몽골을 비롯한 전 세계 8개 개발도상국에서 빈곤한 지역 주민의 자립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수여하는 아산상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서울 종로구 지구촌나눔운동 사무실에서 김 이사장을 만났다.
‘시민’을 키우는 NGO
Q : 지구촌나눔운동을 잠시 떠났다가 돌아왔습니다.
A : “창립 멤버로 합류해서 2010년까지 사무총장으로 일했어요. 이후 대통령실 사회통합수석실 시민사회비서관,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맡았어요. 2021년 4월 다시 돌아와 이사장직을 맡게 됐습니다.”
Q : 설립 당시만 해도 국내 NGO가 국제개발에 나서는 사례는 많지 않았습니다.
A : “민주화 이후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면서 환경·여성·인권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루는 NGO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어요. 다만 대부분 단체가 국내 문제에 집중했고, 국제구호개발에 참여하는 NGO는 많지 않았습니다. 대신 국내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들어와 있던 선진국 NGO 지부들이 해외 원조를 수행하는 공여 NGO로 전환되기 시작했어요.”
Q : 우리나라가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군요.
A : “그렇죠.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설립된 1991년 한국의 ODA 예산은 1억 달러(약 1400억원) 수준이었어요. 올해 예산(6조7972억원)의 2.1%에 불과하죠. 그때 지구촌나눔운동 초대 이사장을 지내신 고(故) 강문규 박사님을 만났어요. 유럽 NGO에서 국제구호개발 경험을 쌓고 한국에서 시민운동에 뛰어든 분인데, 구호 중심인 지원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셨어요. 개발도상국이 자립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고 항상 강조하셨죠.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분들과 지구촌나눔운동을 설립한 겁니다.”
Q : 시민사회의 역량을 키운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A : “주민의 ‘자립’ 지원이 핵심이에요. 단순 지원으로는 공동체가 강해질 수 없고, 공동체가 자생하지 못하면 NGO는 지원을 끊을 수가 없어요. 자립하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주민들이 경제력을 갖추면 정치·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고, 시민사회의 체력이 강해집니다.”
Q : 주민들의 자립을 위해 어떤 지원을 하나요.
A : “대표적으로 베트남에서 2000년부터 ‘암소은행’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빈곤 가구에 우리나라 돈으로 100만원 정도인 암소 구매비를 1%의 낮은 이자로 대출해 주고, 3년 후 원금을 상환하면 이를 다른 농가에 다시 대출하는 순환형 소액대부사업입니다. 주민들은 암소를 활용해서 농업 생산성을 높여요. 새끼를 낳으면 자산도 늘어나죠. 현지인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도 구성했습니다. 암소은행 대상자 선발부터 모니터링까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요. 예방접종을 할 수의사, 외양간을 짓는 건축가 등 전문가도 육성했어요. 지금까지 약 4000가구에 암소 5200마리를 지원했습니다. 그 사이 저개발국이었던 베트남은 중진국 반열에 올라섰죠. 몽골에서도 2002년 가축은행 사업을 시작해 우유 생산에서 가공-포장-유통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했습니다.”
현지 NGO 설립을 돕다
Q :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 이사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A : “새로운 방향성이 필요한 시기였죠. 세 가지 지향점을 정했습니다. 현지화·전문화·운동화. ‘현지화’는 지금까지 지구촌나눔운동이 해왔던 방식과 같아요. 현지인, 현지 단체들이 사업을 주도하도록 역할을 맡기는 거죠. ‘전문화’는 단순 기부나 원조가 아니라 현장 분석, 사업 기획, 실행까지 체계적인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개념입니다. 마지막 ‘운동화’는 지속가능한 국제개발을 위해 시민 참여를 유도하는 거예요. 국제개발사업은 나눔의 정신을 확산하는 운동이 돼야 합니다.”
Q :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A : “최근엔 지구촌나눔운동과 파트너로 일할 현지 NGO 설립을 돕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던 일을 현지 조직에 이양할 겁니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지속발전센터’도 만들었습니다. 센터를 중심으로 전문가 네트워크를 확장해나갈 예정이에요. 운동화는 쉽지 않기는 합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왜 다른 나라를 도와야 하냐’는 인식이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상황에도 많이 영향을 받고요. 지구촌나눔운동에서는 청년을 중심으로 인식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청년들과 국내 청년들이 현장에서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해가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Q : 남은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A : “믿고 후원할 만한, 반듯한 국제개발 NGO가 되는 겁니다. 신뢰할 만한 성과를 내기 위해 직원들과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구촌나눔운동의 정신을 후원자, 파트너들과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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