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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의 시시각각] AI시대 역행하는 한국의 수학 교육

정철근 칼럼니스트
KAIST 김정호 교수는 엔비디아 AI반도체에 들어가는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아버지로 불린다. SK하이닉스는 김 교수의 연구를 토대로 HBM 개발에 성공했고, AI 혁명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하지만 국보급 과학자인 김 교수는 어린 학생들에겐 ‘듣보잡’에 가깝다. 네이버를 치면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국회의원 김정호, ‘이름 모를 소녀’를 부른 가수 김정호, 야구선수 김정호는 나오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AI 반도체 과학자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고교수학서 행렬·벡터 삭제는 실책
중국, 수학영재가 AI 연구개발 선도
과학계가 교육과정 개편 주도해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초등학교 고학년을 상대로 장래 희망을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학생 10명 중 4명 이상은 연예인, 운동선수를 꼽았는데 과학자(4.95%)를 선택한 학생이 조리 및 음식 서비스직(6.76%)보다 적었다. 어린 학생들 눈엔 어렵고 힘들기만 한 과학자보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인기 셰프가 롤 모델인 것이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학문은 수학이다. 그런데 한국은 2018년 고교 입학생부터 수학 교육에서 행렬·벡터를 뺐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설계하는 데 행렬·벡터 이론은 핵심 도구로 쓰인다. 수학이 AI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에 미국, 영국, 싱가포르는 고등학교에서 행렬을 가르친다.

한국에서 수학은 대학입시의 성패를 좌우하는 과목이다. 학생들도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을 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늘고, 우수 학생의 공대 기피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올해 고교 입학생부터 행렬과 벡터가 다시 도입됐다. 하지만 수학 실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한국 입시제도는 너무 자주 바뀌어 빈틈 투성이다. 문·이과 교차지원 제도를 잘 이용하면 행렬·벡터를 피하면서 난도 낮은 과목을 조합해 공대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딥시크 돌풍으로 국가 영웅이 된 량원펑은 중국에서 가장 낙후된 ‘5선 도시’ 출신이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17세에 저장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량원펑은 학생 때부터 수학, 특히 선형대수(행렬·벡터)를 좋아했다. 그가 2013년 창업한 투자회사 이름을 선형대수의 대가인 독일 수학자 야코비에서 따왔을 정도다.

중국의 AI 굴기는 무섭다. 전 세계 대학·연구기관의 AI 연구논문 순위 10위권에 량원펑의 모교인 중국 저장대가 당당히 올라 있다. 미국 하버드대, 카네기멜런대와 영국 옥스퍼드대를 앞서는 수준이다. IT의 강자 인도공과대학(IIT)도 AI 분야에서 한국을 앞서가고 있다. IIT 구와하티 캠퍼스는 2023년 온라인 교육플랫폼 코세라와 손잡고 전 세계 인재들을 상대로 AI와 데이터 사이언스를 가르치고 있다. 매 학기 수천 명의 지원자가 이 대학의 앞서가는 프로그램을 경험하기 위해 선형대수·통계·미적분 시험에 응시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가 이렇게 세계 선두권으로 치고 나가는 동안 한국 대학은 퇴보하고 있다. 영국의 국제대학평가기관 QS 2024 세계대학 순위에서 수학 분야 10위권은 MIT, 스탠퍼드 등 미국 대학과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등 영국 대학이 휩쓸고 있다. 한국 대학은 서울대, KAIST를 빼곤 대부분 100위권 밖이다. 한국 고교교육은 온통 수능에만 초점을 맞추다가 AI가 주도하는 미래의 흐름을 놓치고 있다. 학생 부담을 줄인다는 이유로 범위(행렬·벡터)를 줄이면서 정작 수능 문제는 현직 수학과 교수도 풀기 어려울 정도로 비비 꼬아 출제한다.

올해 ‘의대 쏠림’ 사태는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형적 현상은 머지않아 한국 경쟁력을 붕괴시키는 재앙으로 닥칠지 모른다. 이제 수학·과학 교육과정 개편은 교육부가 아니라 과학자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야 한다. 특히 교육부는 대학교육에서 손을 떼야 한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나눠주면서 대학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관료주의를 깨버리지 않는 한 한국의 미래는 더 암울해질 것이다.





정철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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