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범의 이코노믹스] 통상임금 범위 확대 충격…임금체계 개편 계기로 삼아야
혼란 계속되는 통상임금 산정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일급·주급·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이다. 그런데 각급 법원이 노동 현장에서 많이 활용하는 시행령을 해석하는 ‘고용노동부 행정지침’보다 사안에 따라 통상임금의 범위를 넓게 해석해 왔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노사 간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기업 입장에서 통상임금은 경영상의 난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여 년 전 미국을 방문해 GM에 한국 투자 확대를 요청했을 때, GM 회장이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을 정도였다.

달라져 온 법원의 통상임금 판단 기준
통상임금 문제와 관련한 기존의 사법부 기조는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 대한 2013년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범위에 1개월 단위를 넘어 고정적으로 지급했던 정기 상여금을 포함하며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함을 명확히 인정하고 그 외에 어떠한 임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에 관한 판단 기준으로 소정 근로(근로자와 사용자가 사전에 합의·계약한 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된 것”을 제시했다. 또한 “정기 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에 기초한 추가임금의 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반될 수 있다”며 소급청구에 대해 일정 부분 제한했다.
2013년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나 분규가 상당 부분 정리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경영계는 기업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반면 노동계는 ‘3년까지 인정되는 임금 채권의 소급 청구로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다면 청구를 허용할 수 없다’는 신의칙에 대해 “재계 입장을 반영한 정치적 판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통상임금 관련 주요 판결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고용노동부]](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2/17/c4d6c099-49e7-4470-ad46-c490e2320c43.jpg)
‘고정성’과 관련해서도 여러 소송에서 법원마다 판단이 달랐고, 2024년 대법원의 판례 변경에서 결과적으로 확인했듯 법원의 판단 기준이 변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 근로자나 노동조합도 1·2심의 패소에도 통상임금 소송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통상임금 범위를 넓힌 2024년 판결에서 대법원은 기존의 정기성, 일률성 그리고 고정성 3가지 원칙 중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지급해야 한다는 ‘정기성’과 일정 기준을 충족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일률성’의 원칙은 유지했다. 하지만 특정 시점에 재직해야 하거나 일정 근무 일수를 충족해야 하는 조건부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며 ‘고정성’의 원칙을 폐기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법령상 근거 없이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의 사전 확정’을 의미하는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요구하는 것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하며 소정 근로일수 이내의 근무 일수 조건이 부가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임금의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며 “회사가 재직 조건 등 지급 조건을 부가해 쉽게 그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통상임금 개념의 강제적 적용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게 된다”는 것을 판례 변경의 이유로 밝혔다.
통상임금의 요건에서 고정성을 폐기하기로 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하급 법원에서 고정성과 관련해 대법원에 대한 도전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2013년 판결이 잘못됐음을 10년이 지나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법 판결, 2013년 판결 잘못 인정한 셈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한 대법원 판결의 후폭풍은 거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조건부 상여금’까지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휴일·연장·야간근로 수당 등이 인상돼 기업의 추가 인건비 부담을 연 7조원 정도로 추정했다.
대법원이 이번 판례가 최종적으로 확정된 과거의 소송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지만 대법원 선고일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적용된다고 밝히며, 오랜 기간 대법원에 계류돼 있던 통상임금 소송이 원고 측에 유리하게 파기 환송되고 있다.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한 달 정도 흐른 지난달 22일 기준, 소송 제기 10년여 만에 재직자 요건의 정기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이 인정된 ‘세아베스틸’ 사건 등 6건의 상고심이 영향을 받았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소급분을 돌려달라는 소송 제기도 이어질 전망이다. 기아차 노조 집행부가 향후 제기할 통상임금 소송에 약 2만명의 조합원이 위임인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인 현대차를 비롯, 많은 대기업 노조도 기아차 노조처럼 대법원 판례 변경에 따라 통상임금 소송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노조는 “전원합의체 판결 강행 규정을 근거로 기존 통상임금 미반영 항목을 포함해 2019년 노사 합의 당시 미흡했던 부분까지 검토해 권리를 쟁취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포함해 통상임금과 관련한 법원 판결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쉬움이 크다. 노동시장의 역동성을 고려하지 않고 법리적 해석에 집중해, 법원 판결의 변경에 따른 노동시장의 혼란에 대한 고려가 미흡해서다.
사실 통상임금을 정하는 데 있어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고정성’ 개념을 도입한 것이 대법원이다. 대법원은 1996년 2월 9일 선고한 ‘94다19501’ 판결에서 “어떤 임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려면 그것이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적인 임금’에 속해야 하므로”라고 했으나 고정성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관련 소송이 크게 증가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특히 휴가비 등 소액 수당에 한정해 제기됐던 통상임금 소송은 2012년 대법원이 금아리무진 소송에서 정기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인정하며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하급심 법원은 정기성과 일률성이 인정되면 바로 고정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수십년간 현장에서 활용했던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산정 지침’은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적 금품 등을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의칙 적용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2019년 시영운수 소송에서 “신의칙에 위배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판례 변경으로 인해 기존의 통상임금 기준을 가지고 합의한 임금 교섭의 결과가 흔들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법원이 이번 판례 변경의 효력을 현재 진행 중인 소송뿐만 아니라 판결 이전에 이미 지급된 임금에 대해서도 적용하지 않는 결단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도 대형 사업장의 임금 교섭의 결과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임금은 노사 단체 교섭으로 상당 부분 결정된다. 그런 만큼 단체교섭 기준이 되는 대법원 판례가 바뀌면 교섭의 전제 조건이 바뀌는 것이다. 대법원이 2013년 판결에서 신의칙을 도입한 것이나, 2024년 판결에서 종료된 관련 소송에는 적용하지 않도록 한 것은 이와 같은 현실을 고려한 고육지책이었다.
임금 산정에 혼란 겪는 기업과 근로자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충격에도 이번 판결을 우리나라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통상임금의 적용과 관련된 논란은 우리나라 임금이 너무 많은 수당 등으로 구성된 데서 연유한다.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통상임금의 개념을 정립하고자 한 것은 관련 입법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또한 법이 적용되는 임금의 종류도 통상임금과 평균임금, 최저임금 등 여러 가지다.
소송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많은 기업과 많은 근로자가 통상임금, 평균임금, 최저임금을 산정하는 데 있어서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통상임금의 계산 기초로 사용하는 근로조건이 시간 단위로 산정돼 통상임금을 시간급으로 산정하는데, 같은 액수의 월급을 받아도 사업장 근무형태나 유급휴무 여부 등에 따라 통상임금이 달라진다. 그런 만큼 임금 구성이 단순해져야 한다.
역량이나 성과에 기준한 임금 체계로의 개편도 필요하다. 호봉제에 기준한 연공급 임금체계로 인해 법적 정년은 60세지만 많은 고령 근로자가 정년 전에 주된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고령 근로자가 주된 일터에서 오래 머물 수 있으려면 임금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국민연금 개혁과 연관돼 논의되고 있는 법정정년의 연장도 임금체계 개편이 수반되지 않으면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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