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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의정 갈등 1년, 내년 의대 정원 논의 서둘러야

신입생·재학생 또 휴학 우려, 정부 구체안 제시 필요
환자 고통 외면 말고 의사 단체 전향적 자세 보이길
지난해 2월 19일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내고 의료 현장을 떠났다. 이렇게 시작된 의정 갈등이 1년을 끌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태가 악화한 것엔 일단 정부 책임이 크다. 의대 증원을 위해 철저한 준비와 설득이 필요한데, 일방통행식 결정을 하고 수습도 제대로 못했다. 대형병원을 지탱하던 전공의가 집단 사직하고 의대생이 집단 휴학을 하자 속수무책이었다. 전공의 이탈로 대형병원은 힘겹게 돌아가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지난 10일부터 초응급환자를 제외한 심혈관계 응급 환자 진료를 중단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10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암 환자 진료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5% 늘었지만, 암 수술 건수는 오히려 8.8% 감소했다. 의료 공백이 지속하면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받는다. 더구나 비상 진료 체계를 유지하고 수입이 감소한 병원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 예비비와 건강보험재정 등에서 쓴 돈이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최근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3개 의대에 대해 ‘불인증 유예(보완 후 재평가)’를 통보한 것에서 보듯 충실한 교육을 할 준비도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도 의대 정원을 정할 시기가 다가왔다. 이번 학년도 정원은 기존 3058명에 1509명이 늘어난 4567명이다. 하지만 신입생이 제대로 수업을 받을지와 지난해 휴학한 의대생의 복학 여부도 불확실하다. 교육부는 지난 4일 수도권의 한 의대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휴학을 강요한 사례가 접수돼 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휴학 불허 규정이 있는 경우 수업 거부를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교육부는 “25학번 신입생은 증원 사실을 알고 입학했기 때문에 휴학할 명분이 없고 용납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내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논의를 조속히 시작해야 한다. 이달 안에 전체 의대 정원을 결정해야 3월 말 각 대학이 교육부에 확정된 정원을 제출하고, 4월 입시요강 확정과 5월 공표가 이뤄진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

정부는 내년도 의대 증원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에선 정부의 정리된 입장은 무엇이며 책임자가 누구냐고 묻고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 와중이지만 정부가 좀 더 진전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내년 대규모 증원은 쉽지 않다. 의료계 일부에선 증원 인원(1509명)을 당장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예비 고3 학생 등을 고려할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안이다. 의사 단체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환자 곁을 떠난 의사에 국민은 결코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응급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수술이 밀리는 환자와 가족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이제는 자존심 대결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어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성격과 구성 방식을 놓고 이견이 있지만, 이 기구를 통해 의대 정원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본다. 오는 17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와 만난다. 지속적인 대화로 해결의 물꼬를 터야 한다. 우리가 의정 갈등으로 1년을 허비하는 동안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열풍이 불었고 중국 국내파 연구진이 선보인 딥시크가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의대가 최상위권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 보장과 함께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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