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반공·민족·개발·독재....7개 개념으로 되짚은 한국 민주주의[BOOK]

김정인 지음
책과함께
1948년 8월 15일 민주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후 한국의 현대사는 민주주의 변천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이승만 정부부터 지금까지 모든 정부가 민주주의를 지향했지만 그 내용은 각기 달랐다.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가 지은 『모두의 민주주의』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통사가 아니라 7개의 개념(미국, 반공, 민족, 개발, 독재, 민중, 시민사회)을 중심으로 정리한 책. 김 교수의 이전 저서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와 함께 개념사 연구 3부작을 이룬다.
지은이는 해방 이후 미군정의 대대적인 선전과 홍보로 ‘미국=민주주의’ 이미지가 탄생했다고 썼다. 미군정은 하지 사령관의 “미국의 근본 방침은 조선에 민주주의를 조장하며 장려하는 데 있다”는 성명에 따라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친일파 청산을 방해하고, 국민을 학살하고, 반공동원체제를 구축한 이승만 정부의 일민주의는 민주주의를 표방했으나 사실은 전체주의적 논리에 기반한 반공 파시즘이었다고 비판한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반공이라는 장막이 더욱 두껍게 드리워진 가운데 반공의 자장을 넘지 않는 선에서 사회민주주의가 혁신계와 대학의 이념 서클을 통해 명맥을 유지했다고 서술했다.
박정희 정부 때는 한일협정 체결 반대 시위로 민족적 민주주의가 소환됐고, 개발지상주의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개발 권력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시작됐다고 했다. 처음엔 선개발 후민주화 담론에 다소 호의적이었던 지식인들도 삼선개헌과 유신체제 수립으로 독재가 전면화되면서 반대와 저항으로 돌아섰고 연대 운동권 사회가 형성됐다고 썼다.
1980년대에는 저항 주체로서 민중의 세력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시민사회가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을 주도했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촛불시위 등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 광장이 만들어졌다고 기술했다.
![1987년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씨의 장례식이 열린 시청 앞 광장에 인파가 모여든 모습. [중앙포토]](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2/14/07a035d0-9308-411b-a365-5a7b0dee4d75.jpg)
지은이는 이 책에서 자신이 심판자가 아닌 최대한 관찰자의 안목에서 한국 현대 민주주의사를 정리했다고 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 책의 내용에 독자들 모두가 공감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팩트가 틀려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이 80년 전 해방 직후 때만큼 심각한 게 현실이다. 비상계엄령 선포로 빚어진 최근의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서도 그 책임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는지, 아니면 그렇게 몰고 간 야당에 있는지를 두고 연일 설전과 육탄전이 벌어지고 있다. 적어도 민주주의 담론에 관한 한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오늘도 한국의 광장에선 동원됐건 자발적으로 참여했건 수많은 민중과 군중이 상대방을 향해 극단적 언어로 비판을 쏟아붓는다. 이 또한 민주주의의 한 단면일 것이다.
이 책은 한국 민주주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서술했지만 양 진영으로부터 서로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정권 교체가 여러 차례 있었던 한국에선 이제 어느 일방이 아니라 쌍방이 모두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책임이 있는 시대가 됐다. 이 책이 성숙하고 균형 잡힌 민주주의를 세우는 데 밑거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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