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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생존 건축가의 굴곡진 아메리칸드림...美오스카 10개 후보 휩쓴 '브루탈리스트'

영화 '브루탈리스트'(12일 개봉)는 2차 대전 당시 미국 망명한 유대계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왼쪽)가 전쟁 상흔에 영감 받아 혁신적인 건축물을 창조해내는 30년 여정을 그렸다. 사진 유니버셜 픽쳐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에 더해 지난달 미국 골든글로브 작품(드라마 부문)‧감독‧남우주연상(애드리언 브로디) 3관왕에 오른 화제작 ‘브루탈리스트’(감독 브래디 코베)가 12일 개봉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해 1947년 미국으로 탈출해온 유대계 헝가리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의 30년 전쟁 상흔을, 전후 트라우마 속에 탄생한 육중한 건축 양식 ‘브루탈리즘(Brutalism)’ 걸작에 응축해냈다. 내달 2일(현지시간) 열리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감독‧각본‧남우주연‧여우조연‧남우조연‧음악‧미술‧촬영‧편집 등 10개 부문 후보를 휩쓴 유력 수상 후보다.

"영화적 교향곡…AI 튜닝은 거들 뿐" 옹호도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가 지난달 5일(현지 시간) 미국 비버리힐스에서 열린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브루탈리스트'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어머니가 헝가리계 유대인인 그는 "영화 속 캐릭터의 여정은 제 어머니와 조상들이 전쟁의 공포를 피해 이 위대한 나라(미국)로 온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며 "제가 이 나라로 이주하면서 고군분투한 수많은 사람들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힘을 북돋아 주고 목소리를 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AFP=연합뉴스
3시간 35분(인터미션 15분 포함)에 육박하는 상영시간도 화제다. 헝가리인 설정의 주연 배우 브로디와 아내 에르제벳 역할의 펠리티시 존스의 헝가리어 대사 연기 일부를 음성 복제 AI 툴(Respeecher)로 다듬은 게 밝혀지며 연기상 후보 정당성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를 본 이들 사이에선 “AI 사용이 그렇게나 대수냐”(워싱턴포스트‧CNN)는 반문도 나온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란 명제를 충실하게 입증해낸 이 “거대한 교향곡 같은 작품”(할리우드리포터)에서, 원어민 발음에 충실하기 위한 ‘AI 튜닝(조율)’은 빙산의 일각이란 옹호다.

영화는 나치가 폐쇄한 독일 예술학교 바우하우스 출신의 건축가 라즐로가 난민으로 전락한 뒤, 구원자처럼 다가온 미국 자본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짓빏히는 세월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해리슨의 의뢰로 짓게 되는 초대형 문화 센터의 건축 과정과 함께 굴곡진 삶을 쌓아 나간다.

정교한 일대기에 실화 아냐? 7년 쏟은 70㎜ 필름 걸작
전반부가 장밋빛 아메리칸 드림을 그린다면, 후반부는 흡사 지옥까지 추락하는 그리스 비극이다. 실제 헝가리 난민의 아들로 자란 유대계 브로디가 유년기 기억과 앞서 홀로코스트 생존 작곡가를 연기한 영화 ‘피아니스트’(2002)의 경험을 되살려, 복잡한 재능과 흠결을 겸비한 난민 예술가의 심리와 방황을 절묘한 균형으로 연기해냈다. ‘피아니스트’로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기록(당시 29세)을 세운 그의 두 번째 수상 관측도 높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마치 실존 건축가의 일대기처럼 생생하다. 2015년 베니스영화제 신인감독상 수상(‘더 차일드후드 오브 어 리더’)과 함께 주목 받은 브래디 코베(37) 감독이 작가인 아내 모나 파스트볼과 공동 각본까지 겸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애드리언 브로디)는 낯선 미국땅에 도착한 뒤 부랑자 쉼터에서 술과 약물로 버티며 일용직 노무자로 살아간다. 부유한 미국 사업가 해리슨을 만나며 삶이 급격히 변화한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인터미션까지 미리 계산한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 미술감독 주디 베커가 감독들의 메모와 실존 건축물에 영감 받아 디자인한 라즐로의 작품들, 이런 건축을 폭넓은 시야각으로 담기 위해 할리우드에서 명맥이 끊겼던 와이드 스크린 포맷 ‘비스타비전(VistaVision)’을 서부극 ‘애꾸눈 잭’(1961) 이후 63년만에 부활시킨 70㎜ 필름 영상까지. 제작 기간이 7년에 달하는 이 현대판 고전의 제작비는 놀랍게도 1000만 달러(약 145억원), 할리우드에선 '조커 2'(2024) 같은 블록버스터의 20분의 1에 불과한 저예산 규모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교외에 세트를 지어 주무대인 20세기 중반 미국 펜실베니아를 구현했다.

트럼프 1기 정권 반이민, 브루탈리즘 혐오에 영감받아
영화 '브루탈리스트'(12일 개봉)에서 가이 피어스가 연기한 자산가 해리슨은 "록펠러(자본가)와 살리에리(모짜르트를 질투한 음악가)의 중간쯤 되는" 인물. 기념비적 건축으로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을 브래디 코베 감독은 "트럼프, 히틀러와 닮은꼴"에 빗댔다. 유니버셜 픽쳐스
70여 년 전 시대물이지만 동시대적이다. 코베 감독이 현대 미국에서 착안한 이야기여서다. 반이민 정책 속에 혐오와 차별이 극단화한 도널드 트럼프 1기 집권기(2017~2021)가 그에게 영감이 됐다. 영화의 출발점이자, 또 하나의 주인공인 브루탈리즘 건축양식은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말 “연방 건물을 (신고전주의 디자인으로) 다시 아름답게 만들자”며 노골적인 철거 표적으로 삼은 대상. “추악하고 끔찍한 현대적 건물”을 모두 없애자고 그는 공공연히 발언해왔다.

전후 유럽 재건 과정에서 등장한 브루탈리즘은 거대한 노출 콘크리트 몸체와 장식보다 기능에 초점 맞춘 투박한 건물구조가 특징. 군수 물자 자재로 개발됐던 콘크리트‧철강을 생존을 위한 건축에 적용시킨 것으로, 흉측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코베 감독은 브루탈리즘을 향한 엇갈린 당시 시선을 전후 유럽 이민자들을 둘러싼 미국 사회 초상에 빗댔다. 할리우드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1950년대 브루탈리즘 건축물이 세워졌을 때 많은 사람이 즉시 철거하길 원했다”면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움받기 쉬운 브루탈리즘 건축물이 이민자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감독 "트럼프, 히틀러 건축관 닮았죠"
영화 '브루탈리스트'(12일 개봉)에서 해리슨은 라즐로에게 거대하고 웅장한 종교적 문화 센터를 의뢰한다. 라즐로는 노출 콘크리트와 좁은 방들, 하늘이 내다보이는 높은 천장을 갖춘 설계에 자신의 전쟁 중 생존 경험과 함께 삶의 희망을 투영해낸다. 사진 유니버셜 픽쳐스
그는 또 대통령 재임에 성공한 트럼프와 건축관을 나치 독재자 히틀러와 닮은꼴로 바라봤다. 웅장하고 기념비적 도시 설계에 집착한 '파라오 콤플렉스' 권력자란 점에서다.

배우 가이 피어스가 “록펠러와 살리에리 중간쯤”(롤링스톤 인터뷰 중)이라 묘사한 해리슨 캐릭터가 그런 권력자의 반영. 해리슨은 라즐로의 예술성을 알아보고 자신의 제국을 짓게 하지만, 동시에 그의 재능을 시기하고 소유하려 든다. 최고급 대리석을 구하러 단둘이 이탈리아로 떠난 어느 날, 해리슨은 라즐로에게 추악한 본성을 드러낸다. 예술가의 자존심을 굽힐 줄 모르는 라즐로를 모욕하고 폭력으로 굴복시킨다.

천장서 빛이 그린 십자가…포화 속 살아남은 예술혼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라즐로의 투박한 브루탈리즘 건축은 십자가 형상을 직접 빚는 대신 십자가 모양 빈 공간을 하늘과 빛으로 채워낸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전쟁이 아내 에르제벳을 반신불수로 만들고, 어머니를 잃은 조카의 말문을 닫게 했다면, 라즐로는 영혼마저 무너져 내린다. 그런 그를 결국 치유하는 것도 자신의 건축 설계이다. 전쟁 중 유럽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그의 이전 건축물들처럼 전쟁 상흔, 간절한 희망까지 아로새겼다.

이런 주제를 유려하게 담아낸 영화 속 건축물도 큰 볼거리다. 영화 ‘캐롤’(2015)에서 20세기 중반 뉴욕을 감각적으로 구현했던 미술감독 베커가 아름다운 공간미학을 그려냈다. 매일 정오 햇살이 천장에서 십자가 형태의 빛으로 들이 치는 극 중 문화센터 예배당이 대표적이다. 베커가 자신이 살던 뉴욕 유대교 회당인 시너고그가 다윗의 별을 꼭대기에 달고 있던 것에 착안해 만들었다.




나원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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