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무너진 원칙과 공정을 되살리자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선포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마침내 지난 1월 19일 내란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비상계엄부터 구속까지 47일 동안 우리 국민은 사상 ‘초유’의 사태를 여러 번 목격해야 했다. 이 난국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공수처와 사법기관마저 공정과 상식이 결여된 언행으로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공수처는 수사 권한도 없는 내란혐의에 대해 현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위법과 무능을 드러냈다. ‘영장 쇼핑’ 논란을 벌인 서울서부지법에서의 새벽 난동으로 수십명의 청년들이 구속된 사태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징후로 크게 우려된다.
헌법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는 어떤가? 탄핵 절차는 완벽하게 합법적이어야 하고, 피청구인인 대통령에게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계엄선포에서 헌법을 지키지 않은 채 절차를 위반한 것과 같이 헌재가 절차상 흠결을 드러낸다면 이 나라 법치주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헌재가 탄핵소추사유에서 내란죄 항목을 빼라고 조언했다는 탄핵청구인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경악하고 분노할 일이다. 그것은 지금 헌재가 국민들의 높은 관심과 함께 불신도 받고 있다는 증좌다. 또한 일각에선 탄핵 반대 여론이 40% 이상인 상황에서 헌재가 서둘러 판결하려는 것에 “무슨 저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법원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깊어가는 것도 우려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부지법의 법 적용과 2023년 9월 이재명 대표의 영장 기각을 비교해 보자. 그때 판사는 영장기각 사유를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 인멸 염려 정도 등을 종합하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을 감안했다”고 상세히 밝혔다. 그런데 이번엔 단 15자,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음”뿐이었다. 헌재 탄핵 심판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현직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판사는 증거 인멸, 도주 우려, 범죄 소명 여부를 설명하지 않았다. 국회 체포동의안까지 통과됐던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과 형평성이 단번에 드러난다.
법치란 사회공동체가 구성원의 일탈 행위를 원칙과 공정을 기반으로 보편적이고 논리적 방법으로 풀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법원은 국가가 공인한 보편적이고 논리적인 권력이어야 한다. 헌재 판결이 인용이 되든 기각이 되든 절차상 정당성이 결여되고 원칙과 공정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면 헌재 판사들도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국민의 시선은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과 위증교사, 대장동, 대북 송금 사건 등을 다루는 법원으로 쏠려 있다. 이미 국가의 얼굴인 대통령의 위상과 품격은 바닥에 떨어졌고,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의 권위도 오래전부터 추락했다. 공수처는 물론 원칙과 공정에서 벗어난 헌재와 법원도 점점 품격이 떨어지고 있다. 이 대표 재판 지연으로 논란 속에 대선을 치른다면 사법부는 감당 못 할 상황을 겪을 수 있다.
수년을 끌어온 야당 대표의 사법처리와 계엄사태로 야기된 혼란을 원칙과 공정을 기반으로 빠른 시일 안에 정리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까닭과 과정을 소상히 밝히는 한편, 부하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모습은 결코 보여선 안 된다.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오른다고 해서 계엄 선포로 입은 엄청난 국격 추락과 막대한 국익 손상에 대한 귀책은 결코 면제될 수 없다. 공수처를 비롯한 검경 수사기관은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을 처신을 삼가고, 오직 증거와 법리에 근거한 수사를 해야 한다. 사법기관은 공명정대한 절차와 판결을 통해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정의 지킴이’ 역할을 묵묵히 수행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비상계엄의 사유와 절차를 무시한 현직 대통령의 탄핵소추와 구속은 개인의 법적 책임을 넘어 한국 정치 시스템의 근본적 모순을 다시 한번 환기했다. 더 늦기 전에 1987년 헌법 체계에 대한 재검토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어떤 이들은 탄핵이 기각되면 몰라도 인용된다면 선거부터 치른 후 개헌을 하자고 말한다. 아니다. ‘선 개헌, 후 선거’가 답이다. 또는 개헌과 선거를 동시에 하도록 하자. 아울러 여야 정치권 모두 경제와 외교에는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번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대한민국의 국격 회복과 국운이 달려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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