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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시시각각] 이스라엘이 딱 지금 우리 같았다

지난 2023년 3월 11일 텔아비브에 모인 시위대가 ‘사법부 무력화’에 저항하며 이스라엘 국기를 펼쳐 들었다. 이들은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 개혁안이 독재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딱 지금 우리 같았다.

텔아비브에서만 20만, 전국적으론 무려 50만에 달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개혁(실은 사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시위(2023년 3월 11일)를 벌이면, 이에 질세라 사법개혁에 찬성하는 20만 시위대가 예루살렘 크네세트(의회) 앞으로 몰려가 네타냐후 지지 시위(2023년 7월)를 벌였다.

하루 이틀 그러다 만 게 아니다. 네타냐후가 사법부 무력화에 나선 2023년 초부터 9개월 내내 양 진영이 이런 극심한 대립을 이어가다, 그해 10월 하마스에 침공당해 인질 250여 명이 끌려가고 나서야 비로소 시위를 멈췄다.
사법부 둘러싼 극한 사회 분열
안보 위협 대비 대신 정쟁 매몰
"갈등 속 약한 순간 공격 당한다"
솔직히 그땐 이스라엘 국내 정치에 큰 관심은 없었다. 다만 뉴욕타임스(NYT)에 하루가 멀다고 "대규모 시위가 야기한 정치적 불확실성 탓에 유력 기업과 인재, 돈이 죄다 해외로 빠져나가 첨단기술 산업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식의 경고성 기사와 인터뷰가 실리는 걸 보고 향후 이스라엘 경제가 살짝 궁금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해 상반기에만 투자 유치 금액이 70%나 감소했다. 돌이켜보니, 약과였다. 경제 뒷걸음질이나 성장 동력 약화 정도가 아니라 수천 명의 인명 피해를 낳은 전쟁으로 귀결돼 신용등급이 두 단계나 하향(무디스 A2→Baa1)됐으니 말이다.
이스라엘의 극심한 사회 분열로 인한 정치적 갈등은 결국 하마스 침공으로 이어졌다.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 가족들이 석방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요즘 자꾸만 그때의 이스라엘이 떠올라 불길하다. 하마스 침공 직전까지 사법부를 둘러싼 극심한 정치적 대립이 이스라엘 사회를 양분했고, 이렇게 "이스라엘이 가장 약해진 순간 하마스가 공격했다"는 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비판을 우리 정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서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국내 정치에 매몰돼 외부 위협 관련 군사·정보기관 경고를 무시했다"고 주장한 것처럼, 상존하는 하마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정부는 반대파를 찍어내기 위한 내부 정쟁에만 몰두했다. 북한 위협에서 한시도 벗어난 적 없는 지금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발동과 탄핵 국면 와중에 여당인 국민의힘과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양 진영은 미국·중국에 뒤진 우리 AI 역량이나 국제 정세는 나 몰라라 하고 대권 쟁취를 위한 정치적 유불리만 계산한다. 헌법재판소의 공정성과 이념적 성향을 둘러싼 극한 대립은 계엄으로 이미 막대한 손실을 본 우리 경제에 더한 타격을 주고 국가 안보 역량까지 갉아먹을 게 분명하다. 취임하자마자 관세 장벽을 쌓고 북한과 직거래하려는 트럼프 정부로부터는 이미 소외당하고 있지 않나.
지난 1일 서울 광화문에서 윤석열 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 9차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같은 날인 지난 1일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국민대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 양측 모두 명분은 있었다. 사법개혁 반대파 주장처럼, 뇌물수수와 사기 혐의로 재판받던 네타냐후 총리가 본인의 법적 문제 해결을 위해 사법개혁을 들고나온 측면이 있다. 동시에 "소수의 대법원 판사가 사법 체계를 쥐락펴락하는 걸 고치는 게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찬성파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네타냐후가 사법부를 손보기 전부터 대법원 신뢰도(41%, 2021년 설문)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측은 이런 선량한 국민의 불만을 포착해 개인 비리로 재판받는 본인은 '박해받는 사람', 사법부는 '선출 권력을 방해해 국민 의지를 무시하는 비민주적 세력'이라고 낙인찍었다. 그의 지지자들이 "투표에서 못 이기니 법정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고 동조한 걸 보면 이런 선악 구도 프레임짜기는 정치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아내 문제 등 여러 정치적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이 "좌파 사법 카르텔" 운운하며 헌재와 대법원의 일부 편향된 판결에 불만을 품어온 보수층 지지를 끌어내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문제는 영향력 있는 여야 최고 권력의 정치인들이 사회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분열의 씨앗을 뿌려 사회적 갈등이 극에 달하면 전쟁이라는 국가적 재앙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이 그걸 보여줬다. 그렇다면 진영을 떠나 우리 국민이 해야 할 선택은 명확하지 않을까.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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