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시각각] 이스라엘이 딱 지금 우리 같았다
텔아비브에서만 20만, 전국적으론 무려 50만에 달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개혁(실은 사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시위(2023년 3월 11일)를 벌이면, 이에 질세라 사법개혁에 찬성하는 20만 시위대가 예루살렘 크네세트(의회) 앞으로 몰려가 네타냐후 지지 시위(2023년 7월)를 벌였다.
하루 이틀 그러다 만 게 아니다. 네타냐후가 사법부 무력화에 나선 2023년 초부터 9개월 내내 양 진영이 이런 극심한 대립을 이어가다, 그해 10월 하마스에 침공당해 인질 250여 명이 끌려가고 나서야 비로소 시위를 멈췄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국내 정치에 매몰돼 외부 위협 관련 군사·정보기관 경고를 무시했다"고 주장한 것처럼, 상존하는 하마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정부는 반대파를 찍어내기 위한 내부 정쟁에만 몰두했다. 북한 위협에서 한시도 벗어난 적 없는 지금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발동과 탄핵 국면 와중에 여당인 국민의힘과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양 진영은 미국·중국에 뒤진 우리 AI 역량이나 국제 정세는 나 몰라라 하고 대권 쟁취를 위한 정치적 유불리만 계산한다. 헌법재판소의 공정성과 이념적 성향을 둘러싼 극한 대립은 계엄으로 이미 막대한 손실을 본 우리 경제에 더한 타격을 주고 국가 안보 역량까지 갉아먹을 게 분명하다. 취임하자마자 관세 장벽을 쌓고 북한과 직거래하려는 트럼프 정부로부터는 이미 소외당하고 있지 않나.
네타냐후 측은 이런 선량한 국민의 불만을 포착해 개인 비리로 재판받는 본인은 '박해받는 사람', 사법부는 '선출 권력을 방해해 국민 의지를 무시하는 비민주적 세력'이라고 낙인찍었다. 그의 지지자들이 "투표에서 못 이기니 법정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고 동조한 걸 보면 이런 선악 구도 프레임짜기는 정치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아내 문제 등 여러 정치적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이 "좌파 사법 카르텔" 운운하며 헌재와 대법원의 일부 편향된 판결에 불만을 품어온 보수층 지지를 끌어내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문제는 영향력 있는 여야 최고 권력의 정치인들이 사회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분열의 씨앗을 뿌려 사회적 갈등이 극에 달하면 전쟁이라는 국가적 재앙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이 그걸 보여줬다. 그렇다면 진영을 떠나 우리 국민이 해야 할 선택은 명확하지 않을까.
안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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