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킹산직, 킹무직
“고졸 생산직을? 굳이? 왜?”.
요즘은 철 지난 얘기다. 주요 대기업 킹산직은 인기 최고다. 2023년 400명을 뽑은 현대차 생산직 채용엔 12만명이 몰렸다(경쟁률 300대 1). 스펙(학점, 영어시험 점수 등 취업 요건) 좋은 대졸자, 대기업 현직자가 줄줄이 지원했다. 예나 지금이나 눈 밝은 사람은 좋은 일자리를 알아본다. 킹산직의 급여·복지는 대기업 사무직 못지않다. 요즘 선호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오히려 킹산직이 웬만한 사무직보다 낫다.
그러나 킹산직 열풍에 가리운 그늘이 짙다. 먼저, 철저히 대기업만의 리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전체 취업자의 89%가 중소기업에 다닌다. 소위 ‘쇳밥’ 먹는 중소기업은 생산직으로 일할 청년을 구하지 못해 난리다.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여전히 같은 회사 대졸 사무직 처우가 생산직보다 나은 것도 사실이다. 돈은 분명 중요하지만, 전부가 아니란 얘기다. 그런데, 사무직의 의문은 꼬리를 문다.
‘일자리로서 생산직이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사무직은 제자리 걸음 한 건 아닐까’.
‘회사가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일하는 사무직에게 기회를 주고 성장하도록 하는 데 소홀했던 건 아닐까’.
‘요즘 기업에 야성(野性)이 사라졌다는 탄식이 나오는 것도 사무직 사이에서 직장인의 꿈은 없고, 승진은 꺼리고, ‘조용한 퇴사’만 꿈꾼다는 맥빠진 얘기만 나오는 상황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과거 인기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인 고졸 신입사원 장그래가 “슬리퍼는 사무실의 전투화”라고 말한 데 공감한다. 사무실도 현장만큼이나 뜨거운 일터라서다. 한국 기업은 사무직에게 킹산직이 부러워할 만한 성취감과 비전을 심어주고 있나. 뼈를 갈더라도 나와 회사가 함께 성장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한다는 ‘엔비디아 웨이’에서 배울 점은 없을까. 새해에는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킹무직(킹+사무직)’ 일자리로 가득한 기업이 속속 나오길 기대한다. 슬리퍼를 신고 일해도 가슴이 뛰는.
김기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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