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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기본을 물어야 질서가 잡힌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누구나 생기가 충만할 때는 멈추기를 거부하고 어디론가 건너가려 꿈틀댄다. 꿈을 꾸는 것이다. 어떤 나라나 약동하는 기운이 넘칠 때는 비전(꿈)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느라 힘을 모은다. 대한민국에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들을 만큼 약동하는 시절이 있었다. 건국-산업화-민주화라는 비전을 세우고, 하나를 이룬 후에는 바로 다음으로 건너가며 단계별로 완수하였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부터 장점과 취약성을 동시에 가진다. 장점과 취약성은 상호 의존 관계에 있어서, 어느 단계에 이르면, 취약성이 장점이 날아오를 높이를 제한한다.

대한민국 도약 방해하는 취약성
사유 종속성과 공동체 인식 결여
우린 아직도 ‘국가’-‘민족’의 대결
기본을 놓치면 삶도 나라도 혼란

한국의 취약성은 무엇인가? 하나는 사유의 종속성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에 대한 동일체 인식 결여이다. 세상의 모든 물건과 제도는 생각이 만든다. 우리 삶을 채우는 물건과 제도 가운데 우리가 먼저 만든 것은 찾기 어렵다. 우리가 독립적(창의적)으로 생각(사유)한 적이 거의 없었음을 뜻한다. 이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생각해서 산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한 생각의 결과를 따라 하기로 살았다는 증거다. 우리가 아직 선도국가가 아니라 추격국가임을 드러낸다. 이것이 사유의 종속성에서 비롯된 결과다. 사유의 종속성을 벗어나지 않고는 선도국에 이를 수 없고, 추격국가를 벗어나기도 힘들다.

우리에게 있는 정치적 불안정성의 근원은 우리가, 우리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 피를 흘려서, 우리끼리, 우리 힘으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세우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일본의 식민지로 살다가 어느 순간 다른 나라들의 힘으로 독립하였다. 공통의 꿈과 필요에 따라, 피를 흘리는 고난을 함께 겪으면 거기서 ‘전우애’가 싹트고, 이 ‘전우애’가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은 함께 공유할 우리만의 ‘독립적’인 전우애를 쌓지 못했다. 공통의 전우애를 쌓지 못했다는 말은, “왜 대한민국인가?” “왜 국가인가?”와 같이 국민이 되려면 먼저 자신에게 물어졌어야 할 기본적인 질문을 한 적도 없이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는 말과 같다. 그러다 보니, 정치 시스템이 ‘국가’ 형태로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식민지 시절에 우리를 공통으로 묶었던 ‘민족’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 세력이 강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이 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도 우리가, 우리 필요에 따라, 우리 스스로 선택한 체제라는 관념이 약하기 때문에, 여전히 불안하고 아슬아슬하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 정치 갈등은 ‘국가’(대한민국)를 중심에 놓는 세력과 ‘민족’을 중심에 놓는 세력 사이의 갈등이다. 민족을 중심에 놓는 세력은 반정부 활동과 반국가 활동을 구분하지 않는다.

정치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갈등이다. 경쟁이 정치의 속성인데, 어찌 갈등 없이 정치가 가능하겠는가. 그래서 어느 나라나 다 갈등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 갈등에는 고약한 부분이 있다. 미국의 정치 갈등은 누가 뭐래도 우선 미국이라는 ‘국가’를 중심에 놓는 정치 집단 간의 갈등이다. 일본의 정치 갈등도 우선 일본이라는 ‘국가’를 중심에 놓는 정치 집단 간의 갈등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갈등은 대한민국을 중심에 두는 정치 세력과 대한민국을 중심에 두지 않는 정치 세력 사이의 갈등이다. ‘국가’를 중심에 두느냐 아니면 ‘민족’을 중심에 두느냐는 정치 세력 사이의 갈등이다. 이런 갈등 구조는 대한민국 정체성 자체를 지키려느냐 아니면 흔들려 하느냐로 귀결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정치 갈등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아주 고약한 구석이 있다. 이것이 공동체에 대한 동일체 인식 결여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꿈은 자신이 자신에게 어디론가 건너가자고 하는 독촉이다. 이미 정해진 것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며 생각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보내는 독촉장을 받을 수 없다. 꿈이나 생각은 자기 자신에게서 솟아나는 것이므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궁금해해야 하는데, 그때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와 같은 ‘기본 중의 기본’이 물어진다.

모든 길은 기본에서 태어난다. 국가도 똑같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정치적 혼란은 기본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거 필요 없다. 우선 기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질문들부터 답을 해보자. 그래야 길이 보일 것이다. “당신의 삶에서 대한민국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고 싶은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고 싶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아니면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자신의 필요나 희망을 자신의 공동체와 일치시키지 않는 분열성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정치적인 어떤 행위도 진실이기 어렵다. 기본을 놓치면, 삶도 나라도 혼란이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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