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봐도 심근경색 보인다, AI의사가 보여준 새로운 세상
‘보이지 않는 질병’ 찾아주는 의료 AI
복잡한 추가 검사를 AI로 줄여주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Aβ)와 뇌세포를 망가 뜨리는(과인산화된) 타우 단백질(p-tau)이 축적되면서 생기는 알츠하이머는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MRI에 더해 양전자단층촬영(PET)을 해야 했다. 국내 스타트업 뉴로엑스티는 PET 없이 MRI 만으로 치매 치료제가 해당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지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현재 치매 치료제는 대부분 아밀로이드 베타를 없애는 방식인데, 아무리 아밀로이드 베타를 없애도 타우 단백질이 많이 쌓여있는 경우 큰 효과가 없다는 게 밝혀져서다. 성준경 뉴로엑스티 대표는 “타우 단백질이 뇌 주변부로 퍼지는 수퍼전파 구간을 지나면 치매 치료제가 효과 없다는 점에 착안해 치료제의 적합성을 판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망막 촬영을 통해 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심혈관 질환을 예측할 수 있는 솔루션도 나왔다. 스타트업 메디웨일이 개발한 ‘닥터눈’은 신촌 세브란스병원 등 국내 60군데 병원에서 쓰이고 있다. 검사 비용이 수십만원대로 비싸고, 방사선 노출 위험이 있는 관상동맥 석회화 CT 대신 6만~10만원(비급여) 정도를 내면 이 검사를 할 수 있다. 기존 망막 촬영 검사 기기에서 나오는 결과로 판독하는 거라 기기를 새로 바꿀 필요도 없다. 이근영 메디웨일 최고제품책임자(CPO)는 “닥터눈이 안구에서 추출한 혈관 이미지를 통해 분석한 심혈관 위험 평과 결과가 의사가 CT를 통해 판단하는 예측값과 비슷하거나 좀 더 높은 정도라 식약처에서 인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분석과 예측이 중요한 의료 AI 특성상 대부분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한 AI 기술을 사용한다. 생성 AI는 할루시네이션(환각·AI의 거짓말)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터라 그간 의료 분야에 잘 쓰이지 않았는데, 최근엔 활용 사례가 생기고 있다. 루닛은 지난달 흉부 X선 영상에 대한 판독문을 자동으로 작성해 주는 생성 AI 프로토타입(시제품)을 공개 시현했다. AI가 흉부 X선 영상을 분석해 진단 보고서까지 직접 작성하는 솔루션이다.
텍스트 처리만 가능했던 생성 AI기술이 사진, 음성, 영상 등 다양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멀티모달로 진화하면서 의료 AI 분야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멀티모달 모델이 임상 기록, 유전자 시퀀싱(DNA를 이루는 성분 배열을 분석), 영상, 웨어러블 기기의 데이터 등 다양한 유형 의료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주연 카카오벤처스 심사역은 지난해 11월 열린 KV인사이트풀데이에서 “멀티모달 입력이 가능해지면 AI가 실제 의료인이 일하는 방식을 더욱 가깝게 모사하고, 의미 있는 사용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설명가능성 떨어지는 한계=그러나 기술만 있다고 시장이 크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게 보험 수가 문제다. 실손보험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법정 비급여로 분류되면 몰라도, 돈을 더 내면서까지 ‘저는 AI로 한 번 더 판독 받을래요’라고 요청하는 환자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보험 수가에 달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루닛 관계자는 “급여 적용이 확대되면 의료 기관들의 AI 솔루션 도입이 확대될 거고, 의료 AI 시장의 성장 또한 같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설명 가능성(explainable)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AI는 빠르게 답을 주는데 능하지만, 왜 이런 판단을 내렸는지에 대해선 아직 잘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의사들이 전적으로 AI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의료 AI 산업계에서는 설명 가능한 AI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AI 판단을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건 결국 인간 의사의 몫인데, 어떤 과정으로 해당 결론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AI 솔루션을 쓰는 리스크를 감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준경 뉴로엑스티 대표는 “설명 가능성에 대한 요구가 임상 현장에서 계속 나오고 있어서 현장에 있는 의사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솔루션을 고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맞춤형 진료, AI로 날개=전문가들은 십수 년 전부터 의료계가 꿈꿨던 정밀 의료와 개인 맞춤형 진료가 AI로 날개를 달 수 있다고 본다. AI로 이 약이 특정 개인에게 맞을지 맞지 않을지를 미리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1분 1초가 소중한 암 환자들은 항암제 투여에 대한 시행착오를 줄이는게 중요한데, AI가 여기에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 루닛은 최근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협력해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AI 기반 디지털 병리 솔루션을 개발하기로 했다. 환자의 면역 상태를 AI로 분석해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면역항암제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이 과정이 빨라지면 특정 항암제가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아닌지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성준경 뉴로엑스티 대표는 “여러 형태의 치료제가 있을 때 어떤 조합, 누구에게 어느 시점에 써야 할지에 대한 판단이 중요해질 텐데, 이런 기술이 많이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판단도 하고, 사람이 못 보는 것까지 한다면 인간 의사는 점차 사라지는 게 아닐까. 그러나 현재 의료 체계가 의사 중심으로 돼 있기 때문에 의료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당분간 인간 의사를 대체하긴 힘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만 있는 의사를 대체하진 않아도, 의료진이 부족한 곳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히려 미래 병원엔 AI가 의사를 대체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 스며들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김치원 카카오벤처스 부대표는 “기존 제품을 쓰는 것처럼, AI가 탑재된 제품들이 병원 곳곳에 등장하다 보면 시스템 자체에서 AI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권유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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