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대한민국은 ‘필사적 결단’이 절실하다
필자는 오랫동안 대한민국이 소멸국가를 넘어 자멸국가로 치닫고 있다고 호소한 바 있다. 최근의 사태 전개를 보면서 우리는 자멸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음을 목도한다. 인류국가의 흥망의 역사를 돌아볼 때 깊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우리는 이 정도였는가? 대한민국의 정점(Korea peak)은 여기까지인가?
자문해보자. 대체 왜 이리 사생결단식으로 갈등하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력과 폭력을 불사하면서까지 권력유지와 권력탈취에 매달리는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미래, 오늘의 민주주의와 법치는 망하더라도 내 진영과 내가 지지하는 인물의 집권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자멸의 각오와 공멸의 독선이 아니라면 지금의 반이성적 반공화적 행태는 설명할 수 없다.
나라가 망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진영은 없다. 민주화 초기 ‘남남갈등’ 담론을 처음 제기할 때, 그 의도는 남북문제가 국내갈등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오도된 이념현상을 지적하려는 문제의식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는 더욱 나빠졌다. 진영 적대의 악화, 정치의 극단적 양극화와 함께 사용한 언어는 ‘남남내전’이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남남내전은 한국정치와 사회의 현실일 뿐만 아니라 최중심 현상이 되었다. 처음에 각자의 마음속에서 시작된 심리적 내전은 점차 공공 영역의 언어적·정치적 내전을 거쳐 법적 내전 단계에 돌입하더니 어느덧 신체적 내전 상태에 성큼 들어서 있다.
신체적 내전은 몸을 무기처럼 사용하여 최대한 ‘전쟁 현장’(‘전쟁’은 현재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진영 언어이자 내면 진단이다)으로 달려가서 강렬한 전의(戰意)와 점령 면적과 세력 강도를 보여주는 투쟁상태를 말한다. 무력적·폭력적 내전 직전 상태다. 지금 남남내전은 심리적·언어적·정치적·법률적 단계를 지나 신체적 단계이며 폭력 사용 직전, 또는 준(準)폭력단계에 돌입해있다.
그러나 한때 동반자였으나 지금은 상호 적대하는 두 진영을 대표하는, 적폐 청산과 검찰 정권을 주도한 두 사람이 모두 구속된 현실은 남남내전의 허구와 실상, 표층과 심층을 그대로 보여준다. 군사력을 동원한 통치의 시도처럼 남남내전의 상태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미중대결을 포함해 지금은 세계 대변동의 한복판이다. 함께 혼신의 힘을 다해도 버거운 시점이다. 지금 나라가 길을 잃은 이유는 단연 정치가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갈라져 다투는 나라를 구할 외부 요소는 결코 없다. 대한민국 헌법1조이자 근대 인류 공통의 위대한 고안물인 ‘민주공화국’은 ‘민주정’의 주권·자유·경쟁·갈등과 ‘공화국’의 타협·공존·연대·통합의 결합이다. 군주정·귀족정에 비해 최단명 국가체제였던 민주정이 인류역사에서 보존성과 영속성을 갖게 된 것은 공화국과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비록 민주정일지언정 공화국은 실종되었다. 악성 체제와 악성 정치로 인해 국민들 역시 두 진영의 진민(陣民)으로 갈라지고 있다. 공화국(republic)의 동등한 자유민(freedom)이 아니라, 진영지도자를 부족장이나 군주처럼 추종하는 부족과 군주국(kingdom)의 예종민(serfdom)처럼, 진영의 자발적 진민과 예종민으로 역진하고 있다.
어떻게 넘을 것인가? 두 겹의 결사적 도약(salto mortale)에 길이 있다. 하나는 타협과 공존의 정치가 가능한 헌정체제로의 결사적 도약이고, 다른 하나는 두 진영 진민의 공화국 시민으로의 결사적 도약이다. 결사적 도약은 주체와 객체의 본질과 가치가 비약적으로 전환되는 단계와 순간을 말한다. 그만큼 기존의 본질 및 가치와 절연하려는 자기 투쟁이 필수다. 대한민국은 이 두 겹의 결사적 도약이 아니고는 자멸의 물줄기를 돌리기가 결단코 쉽지 않다.
그 첫 시작은 헌정체제의 대개혁이다. 특히 제1당(야당)과 제2당(여당)이 함께 동등한 숫자로 의회에 헌법개혁 특위를 구성하여, 승자독식과 국정단절, 진영대결과 남남내전을 극복하는 새 헌법을 만드는 일이다. 나라의 근본 토대인 새 헌법에의 타협은, ‘나라를 함께 만든다’는 헌법이라는 말 그대로,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의, 그리고 새 민주공화국으로의 빛나는 결사적 도약이 될 것이다.
새 헌법 논의의 시작 자체가 현재와 같은 상대 진영 타도가 아니라 새 나라, 새 미래를 ‘함께’ 만들겠다는 결단이다. 특위를 여야 동등한 숫자로 구성하는 것 역시 타협과 협치를 위한 도약이다. 합의를 통해 새 헌법과 새 나라 만들기에 성공했던 단 두 번의 경험이었던 4월혁명 및 6월항쟁 때 여당은 압도적인 의석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길을 갔다는 사실을 오늘의 제1당이 명심해야 한다. 대표와 정당들이 결사적 도약을 이룬다면 지금의 진민들 역시 똑같은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함께 환영할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