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브뤼셀의 창] 유럽 경제 재도약 해법은 단일시장 완성뿐…‘드라기 보고서’ 이행해야
![안병억 대구대 국방군사학과 교수](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1/22/3b2c7550-d593-4f53-9782-07dd3e9037e4.jpg)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해 9월 공개한 ‘유럽 경쟁력의 미래’, 일명 ‘드라기 보고서’의 경고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유럽 경제를 심층 해부하고 유용한 여러 정책을 제시했다. 행정부 역할을 수행하는 EU 집행위원회의 경우, 재선에 성공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을 포함해 27명의 집행위원이 지난달 초부터 임기 5년의 업무를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전기차를 비롯한 ‘메이드 인 차이나’의 유럽 공략이 매섭다. 미·중의 충돌에 노출된 유럽 경제는 살얼음판에 서 있는 듯하다.
경제가 저성장의 늪을 헤치고 나와야만 유럽이 국제 정치·경제에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유럽이 다시 한번 단일시장 완성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다.
디지털 경제에 뒤처져 생산성 하락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2024년 9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에서 ‘유럽 경쟁력의 미래’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1/22/e8c47d0e-39b7-44ce-b328-7c09a10befef.jpg)
1990년대 EU가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었던 것은 단일시장(내부시장) 완성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1987년 당시 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EC) 회원국은 ‘1992년 계획’에 합의했다. 상이한 기술 표준이나 환경 규제와 같은 비관세 장벽을 허물어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사람이 아무런 장벽도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시장 완성 계획이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을 겪은 유럽은 10년 넘게 경기 침체에 빠져 헤매는 상황이었다.
당시 회원국은 각종 비관세 장벽을 세워 경기 침체를 극복하려 했으나 이런 정책은 오히려 침체를 더 악화했을 뿐이다. 1985년 집행위원장이 된 자크 들로르는 유럽 통합을 주도해온 독일 및 프랑스와 협의를 거쳐 공동체 차원의 경제 재도약 계획을 제시하고 추진할 수 있었다. 당시 독일의 지멘스와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같은 유럽의 대기업도 단일시장 형성을 요구하며 지속적으로 관여했다. 이런 여러 요인이 작동해 1990년대 유럽은 단일시장 완성을 실행하면서 경제가 활력을 되찾았고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차준홍 기자](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1/22/41d7fcd1-98f9-48a6-92d3-76ab5c98a4a4.jpg)
유럽이 경제를 재도약할 방안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훼손된 단일시장을 재완성하고 디지털 분야의 내부 시장을 만드는 것뿐이다.
2020년 팬데믹 당시 EU 27개 회원국은 저마다 정부 재정을 과감하게 풀어 시민과 기업을 지원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종료된 뒤에도 단일시장을 훼손하는 기업 지원 등이 지속된다. 집행위원회는 EU법 집행을 감독하는 기구로 개별 회원국의 이런 조치를 적발해 시정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한다. 코로나 발발 전 2019년과 비교해 2023년 소송 건수가 60%나 줄었다. 그만큼 집행위원회의 단일시장 감독 의지가 많이 약해졌다.
디지털 시장과 자본시장 통합은 가야 할 길이 멀다. ‘1992년 계획’으로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통합은 꾸준하게 이뤄져 왔으나 아직도 인터넷 전자상거래 등은 회원국별로 칸막이가 쳐져 있다.
미국과 격차 커진 유럽 자본 시장
자본시장 통합은 미국과의 격차가 두드러진다. 컨설팅업체 올리버 와이먼의 자료에 따르면 세계 최대의 자본시장을 거느린 미국은 2023년 기준 연금과 보험, 가계 자산 등이 자본시장에 활발하게 투자돼 GDP의 약 5.25배 규모에 이르는 자본시장을 갖췄다. 반면에 EU 27개국은 국가별 편차가 있지만, 자본시장의 크기가 GDP의 1.3~2배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해 9월 초 유럽 최대 규모의 전자 증권거래소 유로넥스트와 독일증권거래소 등 유럽 주요 증시 최고경영자들은 자본시장 통합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회원국 재무장관과 집행위원회에 보냈을 정도다.
![차준홍 기자](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1/22/416b58f8-66b9-420b-abbe-62e7dbe6412b.jpg)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의 리더십이 미약하다. 독일은 다음 달 23일 조기 총선 후 중도우파 기민당/기사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유력해 점차 리더십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임기 2년 4개월을 남겨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중반부터 레임덕에 빠졌다. 의회에서 과반을 상실해 총리와 정부의 운명을 야당이 쥐고 있다.
많은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유럽 경제는 매번 위기를 극복해온 강자다. 유럽이 저성장 탈출에 성공하면 세계 경제에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실패하면 미국과 중국의 양극화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안병억=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유럽 정치경제를 전공한 국제정치학 박사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관계』 와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등의 저서가 있다. ‘브뤼셀의 창’을 통해 유럽의 정치경제와 주요 정책을 분석한다.
안병억 대구대 국방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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