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칠도 몰래 했는데 욕먹었다, 튀르키예 목욕탕 '민망 사건'
남편의 여행
우리 부부는 부르사에서도 가장 옛 동네로 통하는 ‘오스만가지(Osmangazi)’에서 한 달을 머물렀다. 숙소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량도 많고 방값도 저렴했다. 이스탄불처럼 외국인 여행자가 많은 도시가 아니어서, 현지 분위기를 즐기기에도 좋았다.
문제는 낡고 오래된 숙소였다. 나무를 때는 집이 많아 골목 안이 매캐한 연기로 자욱했다. 유튜브에서 ‘연탄 가는 법’이라도 검색해봐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우리는 300달러(약 43만원)에 가스보일러를 쓰는 신축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거실은 물론 현관‧침대 앞까지 양탄자가 깔려 있어서 아늑하기까지 했다.
유서 깊은 비단 시장도 있다. 부르사는 오스만 제국 시절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해서 예부터 비단 산업이 발달했다. 코자 한(Koza Han)이란 이름의 비단 시장은 15세기부터 장사를 이어온다. 아내 은덕의 실크 사랑은 이곳에서도 여전했다. 은덕은 신혼여행으로 이스탄불에 갔을 때 보따리장수처럼 스카프를 70장이나 샀던 전력이 있다. 결혼식에 온 하객들에게 답례품을 준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보물찾기하듯 예쁜 스카프를 고르던 그 반짝이면서 탐욕 가득한 눈빛을 나는 여태 잊지 못한다. 이번에는 달랐다. 은덕은 코자 한을 두 시간이나 뒤진 끝에 달랑 두 장(1장 약 5만원)의 스카프만 건지고 쇼핑을 마쳤다. 은덕이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후 그날처럼 우울한 표정을 한 적이 없었다.
백종민 [email protected]
아내의 여행
클레오파트라나 어울릴 법한 대리석 의자에 살포시 앉아 목욕을 시작했다. 한데 어딘가 불편했다. 안타깝게도 하맘에는 내 한 몸 뉠만한 탕이 없었다. 고여 있는 물을 부정하게 여기는 이슬람의 문화 때문이다. 로마 시대의 유산인 남탕에는 거대한 욕탕이 있다는데, 후대에 만든 여탕 하맘에는 물을 담아 놓는 탕이 따로 없었다.
비누칠도 맘대로 하지 못했다. 성기를 타인 앞에서 노출하는 걸 죄악시하는 이슬람 율법 때문이다. 나는 신체의 중요 부위를 수건으로 가린 채 손만 꼼지락 거리며 목욕을 했다. 애석했다. 몸도 못 담그고, 때도 맘대로 못 밀면 대체 어디서 목욕의 쾌감을 얻으라는 말인가.
민망한 사건도 발생했다. 바가지로 물을 끼얹으며 몸 깊숙한 곳을 닦고 있는데, 어느 순간 매서운 눈빛이 느껴졌다. 현지 아주머니가 물을 튀기지 말라며 성을 냈다. 형제의 나라에서 싫은 소리를 들으니 서운함이 배가 됐다. 나는 잔뜩 주눅이 든 상태로 씻는 듯 마는 둥 목욕탕을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했다. 부르사 물은 정말 최고였다. 최고급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바른 듯한 온몸이 매끈했다.
김은덕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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