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준비해놓은 후 가는 게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34쪽)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에 써진 한 토막의 시(詩)다. 위의 구절이 힘차게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래 맞아,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났단 말이야. 그리고 아무런 훈련 없이 죽어갈 거란 말이야. 나는 여러 번 이 말을 중얼거렸었다.
일이년이 지난 후, 다시 이 시집을 읽고서, 또 이 구절에서 나는 다시 사색하기 시작했다.
실은, 우리는 태어난 것조차 모르고 태어났다. 자라면서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왜 태어나야 했었는지? 왜 살아야만 하는지도 모르면서,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는다. 밥을 먹으니까, 계속 살고 있다. 자발적으로 살고 있는지? 혹은 수동적으로 살아지고 있는지? 모르면서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35쪽)고 쉼보르스카는 말했다. “사라진다”는 게 아름답다니? 이 말이 사실일까?
살아있는 것이 만약 죽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살아있는 것들로 꽉 차버릴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로 꽉 차버린다면? 땅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악하고 잔인한 일만 남아 있다. 그것은 서로 죽이기다. 혹은 굶어 죽기다. 그래서 살아 있던 자가 죽어 사라짐을 보고, 쉼보르스카는 ‘아름답다’고 말했던 것 같다. 이런 잔인함을 피하고, 지구를 살리고, 후손을 위해서, 때가 되면 나도 너도 우리는 죽어주어야만 한다.
태어남과 죽음은 윤회한다는 게 불교이다. 이 세상에 한 번만 태어난 게 아니다.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수없이 태어난다. 쉼보르스카는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고 말했는데, 극히 소수지만, 후생(後生)을 위해서 “미리 준비를 해놓은 후” 죽는 사람들도 있다.
부처는 태어남은 고통이라고 했다. 태어나면 늙어야 하고, 병 들어야 하고,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도를 닦으라고 했다. 말이 쉽지, 도를 닦는다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생(生)에서 조금 닦고, 또 다음 생에서 또 조금 닦고, 그러면 어느 생에선가는 도를 깨치게 된다. 하지만, 도를 깨치지 전에는, 모든 생물은 죽으면 다시 태어나니까, 다시 태어날 바에야, 다음 생에서는 좋은 복을 많이 갖고 태어나면 좋지 않겠는가!
좋은 복을 갖고 태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살생·도둑질·간음·거짓말 등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부처는 말했다. 남에게 선한 일을 하라고 했다. 고등학생이 명문대에 가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가. 대학생이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싶으면 열심히 일하지 않는가. 가는 곳을 알고서 졸업하는 게 좋지 않은가. 계율을 지키고 선행(善行)을 많이 행한 사람들은, 죽음 후, 자기가 가기를 원한 곳에서 태어난다고 부처는 말했다(잡아함경). 재벌 집에서 태어나고 싶으면, 재벌 집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당신도 좋은 복을 듬뿍 갖고 좋은 곳에서 태어나기를 바랄 것이다. 어디로 가는가를 미리 준비해놓은 후, 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좋은 곳에 가고 안 가고는, 당신한테 달렸네요!
조성내 / 수필가·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