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근의 시시각각] ‘트럼프 스톰’ 속 표류하는 한국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다. 트럼프는 취임과 동시에 캐나다와 멕시코의 모든 제품에 25%의 추가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대해선 60%의 관세를 매기는 등 1기 때보다 더 강력한 관세 압박이 몰아칠 전망이다. 이른바 ‘트럼프 스톰’이다.
캐나다와 멕시코 모두 트럼프 스톰을 맞았지만 대응 양상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9년간 캐나다를 이끈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당선 전부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민자 급증으로 인한 주택 가격 급등, 고물가·저성장으로 지지율이 바닥이었다. 그는 트럼프로부터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라”는 조롱을 당한 끝에 결국 사임했다.
반면에 취임 100일밖에 안 된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의 행보는 당당하면서 신속하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지난 13일 ‘멕시코 플랜’을 발표했다. 트럼프의 요구대로 중국 수입품 대체, 세관 단속을 강화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좌파 성향인 그는 예상을 깨고 민간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등 친기업 정책을 내세웠다. 취임 초기지만 셰인바움 대통령의 지지율은 80%에 육박한다. 이런 응집력은 “트럼프와 대화하되 종속은 거부하겠다”는 그의 노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2기 트럼프 체제가 출범했는데 한국의 대응은 윤석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직무정지 상태다. 한덕수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13일 만에 야당의 주도로 탄핵안이 가결돼 헌재에 계류 중이다. 한 총리는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노무현 정부 때는 한·미 FTA 체결지원회 위원장과 총리를 지냈다. 12·3 계엄 선포 후 극도의 혼란 상황에서 경제를 챙기고 트럼프의 통상 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적임자다. 하지만 탄핵을 서두르는 야당의 폭주에 한국은 트럼프 스톰을 헤쳐 나갈 노련한 선장을 잃었다.
8년 전 한국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촛불집회 와중에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당선됐다. 트럼프는 취임 초부터 한국산 세탁기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한국을 거세게 압박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트럼프 스톰에 대한 대응은 늦었다. 문재인·트럼프 정상회담은 트럼프 취임 5개월이 지난 2017년 6월 30일 이뤄졌다. 회담은 트럼프의 거친 언행으로 굴욕적인 분위기에 별 성과 없이 끝났다. 문 대통령은 그 뒤 통상 전문가 김현종씨를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임명, 한·미 FTA 재협상을 끌어냈지만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트럼프 당선 직후인 지난해 11월 12일 니어재단이 주최하는 ‘미 새 행정부의 세계전략과 한국의 대응’이란 포럼을 참관했다. 12·3 계엄 사태 전이라 이날 포럼에 참석한 외교통상 전문가들의 전망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관련 부처를 포함한 통합대응팀을 구축해 포괄적인 대응전략을 마련한다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계엄 사태 후 돌아가는 현 상황은 8년 전 박근혜 탄핵 정국보다 훨씬 절망적이다. 그 당시엔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를 흔드는 시도도 없었고, 탄핵을 둘러싼 여론도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분열되지 않았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험난하다. 미국의 관세 폭탄, 중국의 공급 과잉, 자원 무기화 등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트럼프 스톰 같은 외부 충격에 대응하는 데는 정부와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상대방을 무조건 비토하는 극단적 대립에서 벗어나 여야가 국익을 위해 협치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 국제정세의 격변에 대응할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대한민국은 트럼프 스톰의 격랑 속에 방향을 잃고 영영 표류하게 될 것이다.
정철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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