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이 ‘상머슴’인 줄 모르면 탈이 난다 [김성탁의 시선]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 발생한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대통령직이 ‘상머슴’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릴 정도로 한국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다. 그래서 당선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방법이 선거다. 2022년 대선에서 윤 대통령은 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고, 지난해 총선에선 여당이 참패하면서 압도적인 여소야대가 나타났다. 이게 주권자가 머슴들에게 깔아준 조건이다.
여소야대에선 국정 운영이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윤 대통령은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 민주당이 감사원장까지 탄핵하고, 정부 예산안을 감액 심사만 한 채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키는 무리수를 둔 것 등은 매우 부적절했다. 하지만 야당 의석 역시 국민이 선거에서 부여한 것이다. 무모한 계엄을 통해 마음에 들지 않는 야당의 행태를 바로잡으려 하는 것은 상머슴을 시켜놨더니 다른 머슴과 수가 틀어졌다고 집안을 통째로 뒤집어엎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대 정부에서도 여소야대 때마다 여권은 골머리를 앓아왔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여대야소가 나타났던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이 처음이었다.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여대야소였던 경우는 이명박 정부가 유일하다. 여소야대를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노태우·김대중(DJ)·김영삼(YS) 정부에선 합당이나 의원 꿔주기 등 온갖 방법이 동원됐었다. 우리 국민이 한쪽으로 권력을 몰아주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이해했다면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대신 다른 노력부터 기울였어야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수 정부를 내세우면서도 극우세력과 거리를 두면서 전향적인 대북·북방 정책을 성공시켰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야당의 행태가 못마땅했다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총선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했다. 하지만 명품백 수수 의혹 등 김건희 여사 관련 사안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이준석 전 대표 축출, 해병대원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의 갈등 등의 과정에서도 용산의 일방통행이 두드러졌다. 역대 대통령들이 가족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 직접 수사를 지시하는 등 매몰찬 모습을 보인 것은 모두 국정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 조치는 하지 않고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는 음모론을 맹신하는 건 온당치 않다.
벌써 조기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가득 차 있을 여야 주자들도 자신들이 머슴이라는 생각을 잊었다가는 윤 대통령과 같은 신세가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야당 대표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고위 공직자라고 해서 무조건 존중해주지 않는다. 평생을 투신했던 일부 정치인의 공헌은 인정하지만, 대체로 한국 민주화는 국민이 피를 흘려 쟁취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권자가 잠시 맡긴 권력을 자기 것인 양 착각하는 머슴은 대가를 치러왔다. 출렁이는 여론조사는 주인들이 이미 보고 있다는 신호다. 누가 고개를 쳐드는지를.
김성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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