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87체제’를 넘어 새로운 헌정체제로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그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껍데기만 민주화된 것으로 보일 뿐 국가권력은 여전히 집중되어 있고, 현실 정치나 국정에 참여하는 사람의 의식과 행태도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 중심에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폐단이 똬리를 틀고 있고, 사람이 바뀐다고 폐단이 고쳐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진단도 나왔다. 그 와중에 대선이나 총선을 검투사들의 대결쯤으로 보고 상대를 때려눕히기를 바라며 참여하거나 응원하는 사람들은 날로 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종전 국가정책을 다 뒤집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정부를 믿은 국민만 날벼락 맞듯이 또 온갖 피해를 뒤집어쓴다. 정치와 정부만 제 역할을 해도 경제, 과학, 기술, 문화, 예술 등등 많은 분야가 날개를 달고 날 수 있음에도 87체제의 실패로 한꺼번에 몰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민주화 이후에 정치나 국정에 참여해온 많은 사람까지 이런 나라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결론에 모두 공감대를 이루었다. 국가 실패의 근원적 원인이 되는 87체제부터 개혁하자고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행정부는 총선 결과 국회 다수세력이 국무총리를 정하고, 국무총리가 행정 수반(head of government)이 되어 각 부 장관을 지명하고 행정부를 구성·운영한다. 외교·국방을 관할하는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도 국무총리나 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어야 한다. 행정부와 국회가 정면 대결로 치닫는 경우는 국민이 해결하게 한다. 그 방법이 건설적 불신임제와 국회 해산 제도이다. 국회 해산은 국무총리의 요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정부 불신임이나 국회 해산이 있으면 어느 경우에나 총선을 치러 국민의 심판에 따라 국회를 다시 구성하고 행정부도 새로 출범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의 헌정개혁(constitution reform)은 다당제 정당체제,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의 확대, 정당의 정상화, 수월한 정당 창당, 지방 정당의 출현과는 자연스럽게 정합성을 갖출 수 있다. 시행 이후에는 현실에 맞춰 지속적인 제도 개선도 가능하다. 독일과 같이 국민의 권리와 자유에 관한 개헌은 국민투표로 정하되, 정치제도에 관한 개헌은 국회의 3분의 2 의결로 정할 수 있도록 개헌 방법을 연성화시키면 된다.
87체제를 넘어서는 헌정개혁의 개헌은 2026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로 확정하거나 4년 임기가 같이 돌아가도록 2028년 총선 무렵에 해도 좋다. 다음번 대선에서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차차기 대통령부터 적용하더라도 헌정개혁을 해야 한다. 대통령제 하에서 전투적 국회와 대통령이 정면충돌하는 경우 해결방법이 없어 벌어지는 국가적 참사를 여러 차례 겪고도 국가혁신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 이제 헌정개혁에 국민이 일어설 때라고 본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것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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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 전 서울대 법대 학장·헌법학, 리셋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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