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바이오 혁명] ‘크리스퍼 혁신’, 유전자를 고쳐 질병을 치료한다
돌연변이는 모든 생명체의 숙명
유전 질환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는 왜 발생하고 이를 피할 수는 없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돌연변이는 모든 생명체가 가진 숙명으로, 이를 피할 수 없다. 방사능·자외선·발암물질을 포함한 다양한 화합물들이 DNA에 변이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외부적 요인을 운 좋게 모두 피하더라도 세포 내에서 대사과정 중 자연 발생하는 활성산소에 의해 돌연변이가 발생하기도 하고, 세포 분열과 증식에 필요한 DNA 중합효소가 DNA를 복제할 때 수억 분의 1의 확률로 실수하기 때문에 저절로 발생하기도 한다. 돌연변이는 유전 질환과 암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생명체가 진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돌연변이가 드물기는 하지만 유전자의 기능을 향상할 수도 있고, 특정 질병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유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돌연변이가 없다면 모든 자손이 부모와 100%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집단은 질병과 환경 변화에 취약해 결국 멸종할 수밖에 없다. 사실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조상의 돌연변이를 물려받아 생존하게 된 것이고, 새로운 돌연변이를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
유전자치료는 유전 질환자에게 정상적인 유전자를 투여해 질병을 치료하는 방식으로, 혈우병을 비롯한 수십 개 질환에 대한 치료제가 성공적으로 개발되었다. 카스제비와 같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반 유전자 교정 치료는 이러한 일반적인 유전자치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유전자치료는 결함 있는 유전자를 그대로 두고 정상 유전자를 추가로 환자 세포에 도입하는 방식인 반면, 유전자 교정은 손상된 유전자를 직접 고쳐 정상 상태로 복구하는 방식이다. 이를 자동차 수리에 비유하면, 터진 바퀴를 교체하지 않고 다섯 번째 바퀴를 추가하는 것이 전통적 유전자치료라고 할 수 있고, 터진 바퀴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유전자 교정이다. 카스제비는 후자의 접근법으로 높은 안전성과 치료 효율성을 입증하였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질환에 대해 수십 건의 유전자 교정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으나, 아쉽게도 아직 국내에서 수행되는 임상시험은 없다.
질병에 강한 동·식물 만들 수 있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동식물의 유전자 교정에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생쥐와 같은 실험동물뿐만 아니라,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 소와 돼지 같은 가축의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질병 내성과 같은 다양한 특성을 가진 동물이 만들어졌다. 또한, 벼·옥수수·감자 등 농작물의 유전자에 변이를 도입해 질병에 강하고 생산성이 높은 종자를 개발하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다. 세균에서 유래한 단백질과 RNA 연구가 인간과 동·식물의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혁신적 도구로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혁신이 가능하게 하려면 기초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김진수=유전자가위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2018년 ‘동아시아 스타 과학자 10인’중 한 명으로 꼽았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명공학기업 툴젠의 창업자이며, 서울대 교수와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유전체교정연구단장 등을 역임했다.
김진수 툴젠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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