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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미국서도 날아온다…스키어의 성지, 니세코

일본 니세코 스키장은 겨우내 눈이 내려 시야가 뿌열 때가 많다. 가끔 하늘이 열리면 맞은편 요테이 산을 볼 수 있다. 최승표 기자
스키는 성가시다(스노보드도 마찬가지). 10㎏에 육박하는 장비를 이고 다니다 보면 진이 다 빠진다. 하지만 전 세계 스키어가 성지처럼 떠받드는 스키장이라면 얼마든지 고생을 감수할 수 있다. 슬로프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숙소가 있고, 스키 마친 뒤 미식 체험과 온천욕까지 즐기는 곳이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지난해 12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스키장을 다녀왔다. 바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니세코(二世古) 지역이다.

올겨울 누적 적설량 455㎝
홋카이도에는 스키장이 120개나 있다. 후라노(富良野)·루스츠(留寿都) 등 유명한 지역이 많지만 외국인에게는 니세코의 명성이 드높다. 1961년 해발 1308m의 안누푸리(安努富里) 산자락에 처음 스키장이 들어섰고, 이후 호주·말레이시아 기업이 스키장을 인수한 뒤 세계적인 겨울 관광지로 거듭났다.

니세코의 최대 매력은 역시 눈이다. 안누푸리산은 바다가 가까워 홋카이도 여느 지역보다 눈이 많이 내린다. 연 평균 적설량이 9~10m로, 올겨울 누적 적설량은 455㎝다(1월 16일 기준).

김주원 기자
양보다 중요한 건 질이다. 니세코는 겨우내 건조한 눈이 내린다. 날마다 솜이불 같은 ‘파우더 눈’이 슬로프를 뒤덮는다. 남다른 설질을 경험하기 위해 명성 높은 스키장이 즐비한 스위스에서도, 미국에서도 스키어가 찾아온다. 정작 스키장에 일본인 비중은 적다.

스키숍과 식당, 술집이 모여있는 니세코 타운은 일본이 맞나 싶은 분위기여서 얼떨떨했다. 정통 일식당은 드물었고, 영어 간판과 백인 종업원이 흔했다. 딱 이태원 같았다. 브라질에서 온 대학생 제프리는 “스키 숍에서 일하며 스키를 즐기는 중이다. 오로지 최상급 설질 때문에 왔다”고 말했다.

활화산 보며 질주, 니세코만의 매력
그랜드 히라후 정상부에서 파우더 눈을 즐기며 하강하는 스노보더들. 최승표 기자
면적 21.91㎢에 달하는 니세코의 스키장은 4개 회사가 나눠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니세코 유나이티드’라 한다. 통합 리프트권을 사면 스키장 네 곳의 슬로프 61개를 모두 이용할 수 있었지만, 사흘간 ‘그랜드 히라후(ヒラフ)’ 스키장 한 곳만 누비기도 쉽지 않았다.

스키 강습업체 ‘트루 니세코’ 최정화 대표와 스키를 탔다. 정설차로 눈을 다져 놓은 저지대에서 몸을 풀었다. 한국 스키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곤돌라 타고 올라가 리프트로 갈아탄 뒤 정상부에 접근하자 딴 세상이 펼쳐졌다. 매서운 눈바람 탓에 시야가 탁했고, 슬로프는 울퉁불퉁했다. 초보 코스도 만만치 않았다. 중급 코스는 강원도 평창 여느 스키장의 상급 코스보다 험난했다. 경사도가 수시로 변했고, 슬로프 폭도 들쭉날쭉했다. 그래도 부드러운 설질만큼은 일품이었다.

그랜드 히라후 타운에 있는 무수 바. 손님 대부분이 서양인이다. 최승표 기자
최 대표는 “눈이 더 쌓이면 작은 나무와 조릿대가 완전히 파묻혀 슬로프와 슬로프 사이를 누비며 진짜 파우더 스키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 이틀 지나고 슬로프가 적응되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작나무와 너도밤나무 사이를 누비며 설국의 매력에 심취했다. 해종일 눈이 내려 맞은편 ‘요테이산(羊蹄山)’이 안 보였는데, 해질 무렵인 오후 4시께 구름이 살짝 걷혔다. 활화산이 형체를 드러내니 스키어가 모두 질주를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미쉐린 1스타 셰프 레스토랑까지
그랜드 히라후 슬로프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 무와 니세코. 최승표 기자
니세코에서의 마지막 날 오전 8시 30분. 스키장 문을 열자마자 정상부로 향했다. 밤새 쌓인 20㎝ 이상의 신설(新雪)을 질주하니 구름을 탄 손오공이 된 기분이었다. 와우! 파우파우(가루눈)!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용기를 내 슬로프에서 벗어났다. 허리까지 눈이 잠기기도 했고, 조금만 스키를 잘못 다루면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짜릿했다. 이게 바로 니세코의 맛이니까.

무와 니세코에 있는 인피니티 온천. 최대 4명이 1시간 15분 이용할 수 있다. [사진 무와 니세코]
스키를 탄 뒤엔 2023년 12월 개장한 ‘무와(Muwa) 니세코’ 호텔에서 쉬었다. 그랜드 히라후 슬로프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이다. 무와는 소위 ‘미쉐린 호텔’로 통한다. 지난해 미쉐린 가이드가 처음 도입한 호텔 등급제에서 ‘1키(최고는 3키)’를 받았다. 로비층에 레스토랑 ‘히토 바이 타쿠보’가 있다. 도쿄에서 미쉐린 1스타 식당을 운영하는 다이스케 타쿠보(田窪 大介) 셰프가 기획한 레스토랑이다. 장작불에 구운 와규(和牛) 맛이 돋보였다. 요테이산을 조망하는 인피니티 온천도 호텔의 자랑이다. 차를 마시며 몸을 지지니 뭉친 근육이 싹 풀렸다.

‘히토 바이 타쿠보’ 식당에서 맛본 와규 스테이크. [사진 무와 니세코]
니세코는 설질만큼이나 물가도 ‘월드 클래스’다. 허름한 마을 식당에서 7조각 스시 세트를 4000엔(약 3만7000원)에 사 먹었다. 요즘 한국인이 열광하는 일본 물가와 거리가 먼 가격이다. 그래서일까. 슬로프 중턱의 낡은 식당 ‘보요소(望羊荘)’에서 먹은 900엔짜리 우동 한 그릇이 각별했다. 신용카드를 안 받아서 1엔짜리 동전까지 탈탈 털어 계산해야 했지만 말이다.

☞여행정보=니세코 스키장은 삿포로(札幌) 신치토세(新千歳)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다. 대한항공·티웨이항공 등이 인천~삿포로 노선을 취항한다. 그랜드 히라후 스키장 종일권은 9500엔(약 8만8000원), 4개 스키장 통합권은 1만500엔. 무와 니세코 투숙객은 스키 강사와 함께하는 그룹 프로그램을 싸게 이용할 수 있다. 종일 2만1000엔(19만5000원), 반일 1만5000엔(14만원). 스노슈잉·양조장 방문 등 각종 체험도 호텔에서 예약해준다. 스키·숙박 패키지 등 자세한 정보는 무와 니세코 홈페이지 참조.



최승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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