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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의 시선] 당신은 믿지만, 당신의 나라는…

이상재 경제산업기획부국장
나는 미용의료기기 개발·제조업 한우물을 파고 있다. 1999년 창업했으니 사업한 지 올해로 27년째다. 밑바닥부터, 맨주먹으로 K-뷰티를 일궜다. 무작정 해외로 나갔다. 2000년대 초 홍콩에서 열린 홍콩코스모프로프 박람회가 시작이었다. 그때는 자금 사정이 빠듯해 전시 부스를 따로 차리지 못했다. 대신 두 발로 뛰었다. 카탈로그 한 장 들고 “고주파 기술로 피부 미용에 효과가 뛰어난 의료장비를 만든다”고 바이어에게 소개했다.

지금은 전 세계 90여 나라에 기능성 의료기기를 내다 팔고 있다.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나온다. 말 그대로 수출로 먹고사는 회사다.

어느 기업인이 겪은 ‘계엄 한 달’
대금 결제 “스톱”, 서울행 “취소”
갑작스런 위기, 회복 탄력성 믿어

8일 오후(현지시간), 나는 지금 미국 뉴욕에서 시카고행(行)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틀 전 부랴부랴 뉴욕으로 날아왔다. 그 다음 시카고와 미시간주 멤피스를 찍고,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대륙을 횡단하면서 거래처 7곳을 잇달아 만날 계획이다.

이번 출장은 예정했던 게 아니다. 아니, 지난해 12월 초만 해도 미국 거래처 전문의와 세일즈맨 20여 명을 서울로 초청하고 손님맞이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새 제품이 오는 4월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앞두고 있어 스케줄이 빠듯했다. 마침 지난해 9월 ‘팝업 성지’ 서울 성수동에 신사옥을 마련한 터라 외국 손님을 모시고 집들이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서울행을 긴급히 취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지난해 12월 3일)한 다음 날이다. 브라질에서도, 태국에서도 “캔슬”(cancel), “캔슬” 통보가 이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위험한 나라’에 우리 사람을 보낼 수 없다.” 곧바로 계엄이 해제됐고 나라는 평온하다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공든 탑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부랴부랴 항공권을 예약했다. 의료기기는 나라별로 진입 조건이 까다롭고 규제 장벽이 높다. 미국에 진출하는 데만 5년 걸렸다. 처음에 실패하고, 재신청을 거쳐 2016년 FDA 심사를 통과했다. 현지에서 관심을 보인 의사가 직접 신청서류 작성을 도와준 덕분이다. 어렵사리 개척한 시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12월 4일 기억은 더 또렷하다. 그날 오후 거래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는 ‘믿을 만한’ 러시아 딜러한테서 전화가 왔다. “물품 대금 30억원을 결제하지 못하겠다”는 거였다. 그동안은 먼저 입금된 걸 확인한 후에 계약한 제품을 선적하는 방식으로 거래해왔다. 러시아 딜러는 이렇게 우려했다. “당신을 믿는다. 하지만 당신 나라는 믿지 못하겠다. (제때 선적을 못 해) 물건을 받지 못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이 거래는 아직도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난해 목표했던 매출 400억원을 달성하지 못했다. 대신 그날에만 50여 통의 메일과 전화를 받았다. 모두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너희 나라 괜찮니?”

나만 이런 건가. 다른 사업가는 어떻지? 불현듯 주변이 걱정됐다. 가깝게 지내는 같은 여성 기업인 C씨에게 연락했다. 그는 오랫동안 출산·유아용품을 제조 판매해왔다. 참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도 지난해 12월 4일 아침부터 주문이 뚝 끊겼다. 매출이 (1년 전보다) 30%는 줄었다. 중국에 공장을 운영 중인데 올해 뭘 해야 할지 사업계획이 올스톱된 상태다. 7일이 달러 유전스(기한부 환어음) 결제일이었는데 환율이 급등(원화가치 급락)하는 바람에 1000만원 넘게 손해를 봤다.”

우리 회사는 러시아와 거래가 지연되는 것 빼고는 당장 손해 본 것은 없다. 현지에 와서 딜러들을 만나보니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눈빛이었다. 감사하다는 마음이었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윈윈’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남은 숙제는 예전 같은 성장세를 회복하는 거다. 얼마 전 눈여겨봤던 경제 기사가 떠올랐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한국의 국가신용등급(S&P 기준)은 삽시간에 10계단 추락했다. 이후 비교적 빠른 시기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를 졸업했지만 원래 신용등급을 회복한 건 18년이 지나서였다.”

신인도를 되찾는 게 그만큼 어렵다. 비즈니스 세계도 다르지 않다. 아니, 더 냉혹하다. 수출 협상과 외화 벌이, 정말 고되고 힘들다. 그래도 나는 우리 기업이 가진 위기 극복 DNA와 회복 탄력성을 믿는다. 20년 전 카탈로그 들고 세계를 무대로 뛰던 시절의 초심이라면 무엇이든 못할 게 없다. 한순간 위기에 와르르 무너지지 않는다.

※이 칼럼은 중견 의료기기 제조회사인 S사의 K대표이사와 전화 인터뷰를 토대로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했습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기업과 기업인의 경영 활동을 어떻게 헝클어 놨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상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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