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대한제국 외교의 장 밝혔던 샹들리에가 지닌 특별한 빛은
서울 중구, 경복궁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덕수궁은 대한제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한 고종은 덕수궁을 황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죠. 주변에 외국공사관이 밀집해 외교에 유리한 입지였기에 고종은 덕수궁 안에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돈덕전 등을 지어 독립국으로서의 자주성을 강조했습니다. 황궁으로 지어 덕수궁 대표 사진에 빠지지 않는 석조전을 지나 뒤쪽으로 들어가면 르네상스·고딕 양식을 절충한 2층 구조의 건물이 보입니다.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리고 대한제국의 상징 문양인 이화문(오얏꽃 문양)을 넣은 푸른 문과 창틀·베란다로 화려하게 장식한 유럽풍(프랑스) 건물 돈덕전이죠.대한제국 '외교의 장'이었던 돈덕전은 내부 역시 황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화려했다고 전해져요. 한국과 일본의 병합 과정과 전후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책 『조선병합사』에는 돈덕전 내부에 대해 '100평 넓이의 홀에 큰 원기둥 6개가 서 있으며, 대원주마다 금색 용 조각이 새겨졌다'고 나오며, '서벽과 창은 홍색 및 황색금수로 치장해두었으며 옥좌·탁자·교자 등은 금색 찬란했다'고도 적혔죠. 외국인 기록을 살펴봐도 황제의 거처이자 접견실이기도 한 이 궁의 실내 장식은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고 해요.
발굴·사진자료를 토대로 벽돌과 타일을 복원하고, 자료가 부족한 내부는 20세기 초 서양 살롱을 모티브로 대한제국 당시 분위기와 비슷한 가구와 조명까지 설치해 100여 년 전 돈덕전을 구현했어요. 특히 100여 년 전 돈덕전 안을 밝히기 위해 특별 주문 제작했을 것이라 추정하는 장식등(샹들리에) 또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여전히 빛을 내는 이 장식등은 단순히 궁궐 안을 밝히는 것을 넘어 당대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을 비춘 특별한 조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고종은 국가와 황실의 상징 문양인 이화문을 넣어 제작한 이 장식등을 통해 대한제국에도 근대의 빛이 피어나기를 염원했을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전기가 일반 시민들이 사는 집까지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어요. 전등 시등회를 보고 놀란 사람들의 모습을 서술한 역사적 사료도 남아있죠. 곽희원 학예사는 "1887년 국내 최초로 경복궁 내 건청궁에서 전등불을 밝히는 시등회가 열렸는데 참석자들은 깜깜한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진귀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해요. 그 후 가로등이 설치되자 ‘귀신불’이라고 부르며 그 앞을 지나칠 때는 부정(不淨) 타는 것을 막는다고 부채나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렸다고 전해졌죠. 전차가 장안의 명물이었지만 고종황제는 전차의 모양이 상여를 닮았다며 안 탔다고 하니 전기라는 새로운 문물에 대한 오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죠"라고 설명했습니다.
덕수궁에는 1901년부터 전기가 들어왔고 2년 후 궁 안에 독립된 발전설비가 마련됐죠. 초기 여섯 개의 전등을 시작으로 이후 500개 이상이 사용될 만큼 다채로운 전등이 유입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사료를 통해 대한제국이 근대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덕수궁 각 건물의 규모부터 바닥재료 등의 정보가 상세히 기록된 책 『덕수궁원안』에도 다양한 조명기구에 관한 내용이 있어요. 특히 전통 건축인 함녕전·덕홍전에 1915년 설치된 조명기구 및 부속품의 종류와 수량 등도 자세히 기록돼 덕수궁 공간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었죠. 이렇듯 전기 도입을 통해 빛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거죠.
1부 ‘대한제국, 빛의 세계로 들어서다’에서는 대한제국의 황궁인 덕수궁에 전등 설비가 마련되기까지의 과정을 전시해 당시 사람들의 전기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어요. 1부에서 주목할 만한 유물은 ‘에디슨 전구’와 ‘덕수궁평면도(德壽宮平面圖)’로 이를 통해 전기가 어떻게 도입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개항 이후 미국에 파견된 보빙사(미국에 우호·친선 및 교섭을 명목으로 파견된 사절단)의 건의로 ‘에디슨 전기회사(Edison Electric Light)’가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첫 전등을 밝혔죠. 이어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를 설립해 덕수궁에 첫 전등을 밝히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연대기적으로 구성해놨습니다.
3부 ‘황실을 밝히다’에서는 석조전의 실내 장식과 공간별 특성에 맞춰 다채롭게 사용된 수입 조명기구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오니아식 장식 기둥과 고전적 문양으로 꾸며진 접견 공간에는 ‘화로형 스탠드’ 한 쌍, 탁자나 침대 옆 협탁에 두었던 ‘석유등’이 당시 석조전 내부 장식을 조달했던 영국 메이플 회사(Maple & Co.)의 가구와 함께 배치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대한제국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죠. 근대적 외교 관례를 갖춘 접견이나 서양식 궁정 연회 시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영국산 ‘화형 초받침’도 전시됐는데요. 이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아꼈다고 전해지며, 요정의 불빛처럼 빛난다는 의미로 ‘페어리 램프’로 불렸다고 해요. 이에 착안해 관람객이 요정을 불러내듯 바람을 불면 만찬이 시작되는 체험형 영상이 마련돼 보는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대한제국 선포 후 확장·정비 사업을 통해 황제국의 위상에 걸맞은 황궁의 모습을 갖추어 가던 덕수궁은 1904년 4월 14일 밤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에서 시작된 큰 화재로 중심부에 있던 전각 대부분이 불타버렸죠. 덕수궁 대화재 이후 재건되어 새롭게 설치된 함녕전과 덕홍전의 장식등(샹들리에)과 유리등갓, 대한문과 덕홍전의 구형 유리등갓 등도 살펴볼 수 있는데요. 일본에 의해 강제 합병된 후 일본식으로 재편된 궁궐 전각에는 일본식 벚꽃 문양을 달거나 일제 황실에서 쓰던 것과 비슷한 조명기구들이 들어왔습니다. 다만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조명기구마다 황제의 상징을 장식해 근대국가로서 위상을 드높이고자 했던 노력은 덕수궁의 근대 조명기구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이보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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