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호의 시선] 민주당, ‘이재명 딜레마’ 직시해야
전문가들은 ‘계엄옹호당’으로 전락한 국민의힘의 선전 이유로 2016년 박근혜 탄핵 학습 효과와 ‘이재명 포비아’를 든다. 여론조사업체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8년 전 학습효과로 ‘탄핵이 곧 이재명 대통령 당선’이라는 우려에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여권 지지율이 탄핵소추 이전으로 복원되는 추세”라고 했다. 그는 “지난달 17~19일 여론조사(한국갤럽, 1000명)에서 ‘이재명 불신’이 51%였고 ‘신뢰’는 41%에 그쳤다. ‘이재명 포비아’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재명 딜레마’를 풀 길은 민주당에 달렸다. 선거를 앞두고 리스크 많은 후보를 걸러내는 건 공당의 최우선 과제다. 이미 법원은 이 대표에게 의원직과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중형을 선고(공직선거법 1심, 지난해 11월 15일)한 상태다. 6개월 안에 끝나야 했던 이 재판은 4배가 넘는 2년 2개월이나 걸려 법원이 엄청난 지탄을 받았다. 윤 대통령이 탄핵 심판 절차를 질질 끄는 배짱도 이 대표의 역대급 재판 지연 꼼수와 그 꼼수를 순순히 받아준 법원에 대한 국민의 공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선지 조희대 대법원장은 선거법 1심은 6개월, 2·3심은 각각 3개월 안에 끝내라는 공직선거법 270조를 지키라고 지난해 9월 30일 판사들에게 권고했다. 민주당이 올해 사법부 예산을 241억원 늘려준 것도 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권고대로 이 대표 선거법 2심을 2월 15일, 3심을 5월 15일 안에 끝내야 할 이유다. 법원이 예산을 늘려 받아간 사유가 바로 ‘재판 지연 해소’이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대선 전에 이 대표의 3심이 원심대로 확정된다면 민주당은 어떡할 것인가. 유력한 대선 주자를 잃고 선거보전금 434억원을 토해내야 할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는 재수 없이 깐깐한 대법원장을 만나 당한 봉변이 아니라, 사법리스크 큰 인물을 유일 대선 후보로 밀었기에 자초한 위기가 될 것이다.
지난 주말 광화문 북쪽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엔 경찰 추산 3만5000명이 모였다. 광화문 남쪽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도 엇비슷한 수(경찰 추산)가 모였다. 탄핵에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지만 민주당과 진보단체들이 주도한 탄핵 찬성 집회 분위기가 박근혜 탄핵 당시 촛불 집회만큼 뜨겁지 않은 이유는 “탄핵은 옳지만, 사법리스크 큰 사람에게 어부지리를 주는 결과가 돼선 안 된다”고 여기는 국민이 적지 않기 때문일 터다.
7개 사건, 11개 혐의로 5개의 재판을 받는 이 대표는 사법리스크 외에도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인 기본소득 등 ‘정책 리스크’, 대북 송금 의혹 등 ‘외교 리스크’까지 안고 있다. 이를 해소하려면 이 대표는 자청해서 재판을 앞당겨 무죄를 입증하는 게 우선이다. 이 대표 주장대로 모든 혐의가 검찰의 소설이라면 재판 결과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나.
민주당은 170석 거야이자 원내 1당이다. 대통령 탄핵 심판이 신속히 진행돼 조기 대선이 치러지길 원한다면 이 대표 재판도 신속히 진행하라고 법원에 요구해야 한다. 국민의힘에선 “조기 대선이 불가피하다면 이재명이 선거법 2심에서 중형을 받은 가운데 대선에 나오는 게 승리를 기대해볼 유일한 카드”란 말이 돈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 탄핵은 분초를 다퉈 밀어붙이면서 자신의 재판은 질질 끄는 행태를 계속한다면 이런 기대가 헛된 망상만은 아닐 수 있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대안을 고민하고, 국민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내놓아 수권정당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강찬호([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