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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 좀 시켜주세요" 회사 멀쩡한데 퇴직런, 왜

‘명퇴와 다르다’ 고정관념 깨진 희망퇴직
경제+
“올해는 희망퇴직 비수기가 없었다.” 희망퇴직은 연말에 한다는 고정관념이 올해 완전히 깨졌다. 1년 내내 희망퇴직 계획을 내놓는 기업들이 나왔다. 업종도 다양했다. 심지어 한 해에 두 번 실시하는 기업도 있고, 사원급까지 대상자를 넓힌 기업들도 있다. 이런 대기업들은 “희망퇴직이 곧 실적 부진의 상징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요즘은 희망퇴직을 서럽게 볼 일만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명예퇴직하고는 다르다”는 주장도 한다. 진짜 그럴까? 희망퇴직이라 쓰고 ‘착한 해고’라 읽던, 금기어 아니었나.
한 해에 두 번…일상화된 희망퇴직
그래픽=주이안
올 한 해 유통업계에선 대기업들이 다달이 돌아가며 희망퇴직 계획을 발표해, 연중 희망퇴직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창사 이후 첫 연간 적자(-469억원)를 기록한 이마트는 이달 두 번째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지난 3월 창사 후 첫 전사 희망퇴직을 받은 지 9개월 만이다. 대상은 15년 이상 근속 직원에서 10년 이상 근속 직원으로 대폭 늘었다. 유통가의 희망퇴직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았다. 11번가(3월), 롯데온(6월), SSG닷컴(7월), 롯데면세점(8월), G마켓(9월), 세븐일레븐(10월), 롯데호텔·신세계면세점(11월)까지 줄줄이 이어졌다. 롯데온은 연중 두 번째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과 경쟁하는 제조업들도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6월 생산직군에 대해 희망퇴직을 실시한 데 이어 11월엔 사무직군에서 진행했다. SK온은 2021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지난 9월 희망퇴직을 받았다. 무급휴직을 하면 월급 대신 학비를 내주는 프로그램도 내놔 직원들 사이에 호응이 좋았다. 젊은 엔지니어 등 인재를 놓칠 수 없는 상황에서 단기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묘안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두둑한 희망퇴직금은 ‘퇴직 런(run)’을 부르기도 한다. 12년 만에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한 엔씨소프트는 근속기간에 따라 최대 30개월치 월급 수준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위로금이 최대 3억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지자 타사 직원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희망퇴직 신청 후 회사의 승인을 받아 퇴직을 확정한 직원이 400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 발간된 『희망퇴직 매뉴얼: 준비에서 성공까지』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희망퇴직’ 관련 기사 수는 연간 많아야 1400건 정도였는데, 올해는 7월에만 관련 기사가 1600건을 넘어섰다. 저자인 오성호 피플그로스컨설팅 대표는 “1년에 두 번씩 하는 희망퇴직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부진 상징 아니다? 근데 왜 늘어날까
희망퇴직의 직접적인 이유는 기업의 실적 부진이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 그런데 전문가들은 희망퇴직이 늘어나는 이유를 하나 더 꼽는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기업엔 이전과 다른 역량을 지닌 새로운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구조조정 수요가 생긴다는 분석이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은 태생적으로 ‘인력 신진대사’를 추구할 수밖에 없고, 앞으로도 법 테두리 내에서 희망퇴직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흐려지고 입사와 퇴사가 수시로 이뤄지는 고용 구조의 변화도 원인으로 꼽힌다. 몇 년 새 수시·경력 채용이 일반화하면서 현재 5대 그룹 중에서는 삼성만 유일하게 그룹 신입 공채를 유지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앞으로 희망퇴직이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익명을 요청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해고가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희망퇴직은 기업의 마지막 옵션”이라며 “이직에 대한 거부감이 낮아진 MZ세대를 중심으로 직원들이 희망퇴직을 먼저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자를 대상으로 ‘상시 퇴직’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50대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기 퇴직 후 재취업을 위한 교육을 지원하는 곳들도 있다. 한 10대 그룹 인사담당자는 “상시 퇴직 프로그램은 인위적 인력 감축이 아닌 자율적인 퇴직을 돕는다는 취지”라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안하다” vs “오히려 좋아”
직원들 사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과거와 같이 희망퇴직이 ‘실패’가 아니라 다른 도전을 해 볼 기회라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 최근 엔씨소프트에서 위로금 3억원을 받고 희망퇴직한 개발자 A씨(42)는 “원래도 이직 고민이 있던 차에 한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보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희망퇴직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올해 한 이커머스 업체에서 희망퇴직한 30대 B씨는 “이 회사에 계속 다니면 안정적인 수입은 유지되겠지만, 안주하다 보면 연차와 나이가 (새로운 도전에) 약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외국계 제약사에 다니는 C(38)씨는 본인이 희망퇴직을 신청했지만 회사로부터 거절당했다. C씨는 “희망퇴직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니 이참에 나가자 싶어서 신청했으나 회사가 승인을 안 해줬다”며 “‘나중에 퇴직금만 받고 나가라’는 뜻인가 싶어 섭섭했다”고 털어놨다.

다만 채용 시장이 얼어붙은 경우 희망퇴직에 대한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D씨(35)는 “요즘 직원들 사이에서 위로금 규모보다는 이직 시장 상황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며 “희망퇴직 후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 재취업이 어려워진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전했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40대 E씨는 “올해 ‘티메프’ 사태도 있었고, 대규모 희망퇴직이 이어지다 보니 취업 시장에서 공급이 많아졌다”고 했다. 한 유통업체에서 15년 근속 후 최근 희망퇴직한 40대 F씨는 “아직 국내 고용시장에서 ‘희망퇴직자는 재취업이 힘들 것’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가면 지옥’ 생각 안 들도록
희망퇴직이 인력 선순환 구조에 도움이 되려면 결국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우리 경제의 문제는 새로운 산업이나 기업, 비즈니스 모델이 많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경제의 역동성이 있어야 고용 시장도 유연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희망퇴직을 기업 내 인사 문제로만 생각하면 절대 해결이 안 된다”며 “결국 기업의 성장에 대한 문제고, 더 좋은 새 기회가 많아지면 희망퇴직이 확대되는 것도 문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회사 나가면 지옥’이라는 생각을 덜 하게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만 교수는 “퇴직자가 재취업 시장에서 유리하려면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건 기존 회사 재직 중에 해야 한다”며 “기업들이 전문직 제도를 확대하는 등 인력 관리를 꼼꼼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희망퇴직을 구조조정 수단으로 남발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람을 너무 자주 내보내면 기업 평판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남은 직원들의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가 정작 능력 있는 직원들이 퇴사하면 제도의 효과가 떨어지니 무조건 내보내는 게 답은 아니다”며 “노사 간 협의를 통해 임금 체계의 연공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선을.이수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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