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련의 시선] 이재명 대표의 과속이 걱정스러운 이유
윤석열의 붕괴로 가장 바빠진 이는 요즘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린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는 이미 대선 모드다. 사법리스크 외줄을 타며 대선 일정을 조금이라도 앞당겨보려는 그에 대해 요즘 “조급해 보인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계엄 사태 이후 감사원장·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겁박하는 탄핵 드라이브 등등을 또 얘기하자는 건 아니다.
조급함은 갑자기 전시에 나선 경제 정책의 빈곤에서 오히려 더 역력히 드러난다. 얼마 전 민주당은 월급쟁이에 불합리한 조세 제도를 손보겠다는 ‘월급방위대’를 출범했고, 개미투자자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며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역시 ‘개인투자자를 위해’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했고 가상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도 유예하는 소득세법을 통과시켰다. 전대미문의 야당 단독 감액 예산안을 국회에서 통과(12월 10일)시킨지 5일만에 꺼낸 추경론 한 가운데 ‘이재명 시그니처’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이 들어있다는 게 압권이다.
하나하나 논쟁적이지만 그 모두가 당장 표로 환산되길 기대하며 내놓은 전략 상품이라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3년 전의 ‘기본’ 시리즈와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같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도 다시 시작한단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2024년 12월 대한민국에서, 지지율 37%(한국갤럽) 정치인의 이같은 전시 행보는 지나치게 한가해 보인다. 우리를 둘러싼 안팎의 환경을 보자. 국내외에서 내년 한국의 1%대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은 수출이 주춤하면 성장도 꺾이는 경제 구조인데, 내년 수출 증가율이 올해의 6분의 1(5개 기관 평균 1.5%)로 급감할 전망이다. 눈앞이 캄캄한 기업들은 내년 경영 계획도 못 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이 거의 모든 제조업에서 한국을 위협하고, 미국마저 한국 기업의 첨단기술 공장을 유치하며 일자리를 두고 경쟁한다. 좋으나 싫으나 제조업은 일자리의 핵심이고, 대기업은 좋은 일자리의 핵심 공급처라는 사실을 미국은 오래전 다시 깨달았다. 한국 기업들이 인건비 비싸고 규제도 많은 한국에서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가 점점 어려운 것이다.
이렇듯 한국에서 기업이 떠나고, 한국 증시에서 투자자들이 떠나는 핵심 이유는 한국의 성장 잠재력에 대한 회의다. 스타트업이 자라기 척박한 한국에 대한 글로벌 모험자본의 관심도 지지부진하다. 국내 벤처캐피탈 시장에서 해외 자본의 비중은 2%도 안 된다(약 2000억원). 이 모든 진단이 향하는 질문은 하나다. 한국은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릴 수 있는지, 즉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을 배출할 수 있느냐는 거다.
저성장의 위기에 가장 불안해하는 건 중도층이다. 3년 전 윤석열도 이재명도 싫었던 이들이다. 누구든 다시 이들의 마음을 잡고 싶다면 조급하게 나설 게 아니라, 일단 귀를 열고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후 달라진 경제 구조에 대한 해법을 빅픽처에 담아야 한다. 지난 19일 열린 상법개정안 토론회에서 이 대표는 중재자를 자처했지만 일각에선 ‘본회의 통과’를 당론으로 정한 마당에 하는 요식 행위 아니냐는 의구심이 여전하다. 민주당은 국회가 요구하면 기업 영업비밀이라도 무조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국회증언감정법)도 단독으로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 대표는 먹사니즘 실용주의자라고 어필하기 전에 먹고사는 문제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이 처한 상황과 절박함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그래야 지정학적 위기를 동시에 감당해야 할 한국의 생존 전략도 보인다.
이런 요구는 이재명 대표의 지지율에 가려진 잠룡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대통령 탄핵으로 준비 없이 등장한 정권의 말로를 이미 경험했다.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을 주장하던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영끌족에게 빚더미와 회한만 남기고 퇴장했다. 좋은 일자리 없는 ‘소주성’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이며, 대책 없는 ‘탈원전’은 얼마나 소모적이었나. 8년 만에 또 대통령 탄핵소추를 경험 중인 한국은 이제 정말, 준비된 혹은 준비하려는 자세를 갖춘 리더가 필요하다.
박수련([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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