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주의 퍼스펙티브] 폭력과 증오는 민주주의 위협, 사랑과 연대 강화하자
성탄절에 되돌아보는 한국 정치
분노는 더 큰 폭력 가져올 뿐
현재 한국 정치에서는 비상계엄령 선포, 그리고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라는 비극적 사건이 재연됐다. 노무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에 이은 세 번째 탄핵소추다. 다른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찾아보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행인 점은 정치적 혼란 상황에서도 유혈 충돌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혼란이 향후 좌우 극단 세력 사이에 폭력 사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시민들의 일반적인 상식과 동떨어진 극단적인 정치 세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들 양극단의 세력들이 정치적 혼란을 이용해 폭력을 자신들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폭력을 동원해 대중을 선동하고 정치적 적대 세력을 위협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으로 도구화된 폭력이 어렵게 일구어온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또 다른 위협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제도 개혁 진지하게 논의해야
현재 한국 정치는 과거 조선의 당쟁과 유사하다. 유교 이념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으로 사화·환국·옥사가 거듭해 나타났고 선비들이 죽임을 당했다. 현재 한국에서도 좌우 양극단의 이념적 정치 세력들이 각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치적 혼란의 시기마다 이들 시위 기획자들의 모습을 봐왔다.
그런데도 아직 폭력 사태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 상황에서도 스페인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내전이나 집단적 광기, 유혈 폭력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 집회 이후 쓰레기를 치우면서 질서를 지키는 한국의 시위 문화는 약탈과 방화가 벌어지는 프랑스식 시위와 다른 모습이다.
결국 한국은 극단적 대립이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민주적 회복 탄력성’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계가 한국 정치의 이런 특성에 주목한다. 한국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다시 권력 이행기에 접어들었다. 민주적 회복 탄력성의 핵심은 정치적 분열과 혼란 속에서 오히려 피어나는 사랑과 연대다.
이제는 정치 제도 개혁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하다. 권력 분산과 민주주의 강화를 목표로 내각제, 이원집정제, 선거제 개편 등이 거론된다. ‘1987년 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은 한국 사회의 급속한 발전과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제도는 사람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주지만, 제도를 만들고 활용하는 것도 사람이고 악용·남용하는 것도 사람이다. 세상은 저절로 변하는 법이 없다. 반드시 뜻을 모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노력할 때만 변하게 된다.
정치인의 권력 제로섬 게임 막아야
권력만 바라보는 정치인들은 극단적인 폭주와 대결의 정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 권력 우위 또는 권력 독점을 추구하다 보면 제로섬 게임이 되기 때문이다.
무실역행(務實力行, 참되고 실속있게 힘써 행동)하는 정치인들은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극단적 분열의 정치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일이 성사되기 위해선 상대방과의 설득과 타협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권력투쟁의 능력보다는 권력을 통해 실현할 비전과 정책이 중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숙의와 배려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울 시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인재양성과 더불어 정치인 세대교체의 방식과 조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태어날 때부터 선진국이었던 세상을 체득하고 글로벌 경험이 풍부한 20~30대 정치 신인들이 성장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한국이 중진국이던 시절에 태어난 중년 중에서도 ‘글로벌 대한민국’ 운영에 기여할 소양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재들에게는 기존 정치권이 문호를 적극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이들이 기성 스타 정치인들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룰과 무대를 만들어주자. ‘흑백요리사’처럼 멋진 도전과 감동적인 경연의 기회를 열어 주자. “나는 정치인이다”라는 프로정신과 자부심을 표출할 수 있는 대중 플랫폼을 구상해 보자.
‘작은 옳음’ 넘어 ‘큰 옳음’ 찾아가길
크리스마스는 반성과 사랑, 화해와 용서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시기다. 현재 한국은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위기 속에서 변화가 절실하다. 기도와 명상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알아차림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내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지하는 것이 성찰의 근본이자 변화의 시작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정치적 감정: 왜 사랑이 정의에 중요한가(Political Emotions: Why Love Matters for Justice)』에서 사랑·공감·연민과 같은 감정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의를 증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감정의 민주주의는 정치 제도와 지도자들이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육성하여 민주적 가치와 공동체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둔다.
각자의 ‘작은 옳음을 넘어 더 큰 옳음’을 함께 찾아가려 노력한다면 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신뢰가 쌓일 수 있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재도약을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한다. 올해 성탄절이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에 사랑과 평화라는 메시지로 다가오길 기대한다. 한국 국민이 가진 연민·연대라는 감정으로 다시 하나가 되길 희망한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성탄절이 되길 소망한다.
손인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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