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간은 거짓말처럼 흘러, 10년 전 터키 여행 중 어느 적막한 시골의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한국에서 왔다 하니 여점원이 활짝 웃으며 한국말을 공부하는 중이라 했다. 노트를 보여주는데 ‘서랑해요’라고 씌어있어서 ‘사랑해요’라고 고쳐 주었다. 일행과 함께 자동차를 세워놓고 쉬면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틀었다. 얼마 안 가 동네 젊은이들이 잔뜩 모여 음악에 맞춰 싸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후 쿠바에 가서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인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김치를 ‘차이니즈’ 김치라고 라벨을 붙여 팔기도 하던 80년대 말, 맨해튼의 한인타운에서 설렁탕을 먹으며 서울의 포장마차를 그리워하던 유학생들은 한국 드라마를 잔뜩 빌려다 보며 그 시절의 고독을 달랬다. 전 세계가 한국 드라마에 매료된 세상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미래의 시간 2024년까지도 세상에 전쟁이라는 단어가 계속 존재하리라는 것도 몰랐다.
타인의 불운을 구경하길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전쟁 관광 상품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우크라이나 전쟁터를 구경하는 상품인데, 주요 고객은 미국인과 유럽인이라 한다. 러시아가 민간인을 학살한 폐허의 현장을 보여주는 그 값은 한국 돈으로 22만원에서 37만원 사이이며 전선에 가까울수록 비싸져 최고 483만원에 이른다. 그 허무한 전쟁에 투입된 북한의 젊은이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억울하게 죽어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영화 제목을 여기에 소환한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계엄은 45년 전의 그때와는 분명히 다른 얘기다. 그걸 같은 선상에 두는 사람이 있다면, 시대는 저만치 앞서가는데 의식은 그때 그대로 머물러있는 거다.
오래 살다 보니 막다른 골목에 몰린 돈키호테가 힘센 거대집단을 향해 계엄을 선포하는 건 처음 보았다. 계엄이란 대체로 힘센 권력이 힘없는 대중을 향한 것이 아니던가? 돈키호테는 풍차와 싸우는 중인데, 사람들은 서로 편을 갈라 서로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탄핵을 찬성하거나 반대한다. 이 낯익은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자살·탄핵·실패를 전제로 한 계엄 등으로, 우리 대통령들의 불행한 운명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정치 보복으로 점철된 이 나라의 부조리한 정치 체제를 전면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견에 100% 공감한다. 대통령이 탄핵 된 날 페이스북을 열다가 들뜬 축제 분위기 속에서 “탄핵은 기쁜 일이 아니라 슬픈 일이다”라는 누군가의 문장을 발견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문득 슬픈 생각이 들었다.
황주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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