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계엄에 묻힌 밤
멀리 워싱턴에서 계엄 사태를 지켜보면서 윤 대통령의 마음 한구석에 트럼프가 ‘롤 모델’마냥 자리 잡은 건 아닌지 의심해보기도 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의사당 폭동을 부추긴 4년 전의 그 트럼프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몇몇 대목에서 두 사람은 겹쳐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군 투입을 ‘경고용’이라며 감싼 것처럼 트럼프도 의사당 폭동을 ‘사랑의 날’이라며 두둔했다. 끝내 좌절되긴 했지만 트럼프 역시 재임 중 시위대를 향해 군을 동원하려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으니 바로 음주 문제다. 윤 대통령이 오랜 폭음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것 아니냔 우려는 취임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는 트럼프는 적어도 알코올이 문제가 돼 국정을 그르치는 일은 없었다. 때때로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지만, 계엄을 선포하는 무모함까지는 이르지 않은 것도 금주와 같은 최소한의 절제를 아는 삶의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대한민국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계엄에 묻힌 밤’으로 뒤엎어버린 애주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한 토막이 있다. ‘…/코가 석 자나 빠진 루돌프들이 이끌고 가는/세상 참, 떼꾼한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정끝별,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중에서)’ ‘코가 석 자나 빠진’ 최고 권력자가 끝내 탄핵 심판대에 오르게 된 2024년의 12월. ‘세상 참, 떼꾼한 크리스마스’가 가엾게도 다가오고 있다.
정강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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