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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탄생 150주년, ‘시계장인’ 라벨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2025년에는 세계 곳곳에서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음악이 많이 연주될 듯하다. 1875년 3월 7일 프랑스 바스피레네의 시부르에서 태어난 라벨의 탄생 150주년이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라벨 피아노곡 전곡을 녹음해 작곡가를 기념할 준비를 마쳤다.

라벨은 13세 연상인 클로드 드뷔시와 함께 ‘인상주의 음악’ 작곡가로 분류된다. 음색과 화성으로 찰나의 매혹적인 울림을 만들거나 암시하는 분위기를 중시했다. 같이 묶이지만 드뷔시와 라벨은 대조적이다. 드뷔시 음악이 점묘화같이 몽환적이고 모호하다면, 라벨의 음악은 또렷하고 정확하다. 스트라빈스키가 “스위스 시계장인 같다”고 표현한 대로다.

2025년은 모리스 라벨의 탄생 150주년이다. [AFP=연합뉴스]
라벨의 관현악곡 ‘볼레로’를 들어보면 그 표현이 실감 난다. 스페인 춤곡 볼레로 리듬 위에 단 두 개의 주제만을 반복한다. 악기들이 차례차례 가세하고 타악기 주자는 스네어드럼을 시계 초침처럼 쉬지 않고 연주한다.

라벨은 ‘관현악의 마술사’라고 불렸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 자신의 피아노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했다.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의 오케스트라 버전 중에서도 라벨의 편곡이 가장 많이 연주된다.

고전음악의 전통을 중시한 라벨은 온고지신의 작곡가이기도 했다. ‘물의 유희’와 ‘밤의 가스파르’는 프란츠 리스트를 계승했고,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는 슈베르트의 영향을 받았다. ‘라 발스’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바쳤다. 피아노 협주곡 G장조의 경쾌한 화려함은 모차르트와 일맥상통한다.

민족 정서를 중시한 라벨은 ‘스페인 광시곡’, ‘어릿광대의 아침노래’, 오페라 ‘스페인의 한때’ 등 바스크인이었던 어머니의 나라 스페인을 명시한 작품들을 썼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벨라스케스가 그린 스페인 왕녀 마르가리타를 염두에 뒀다. 1928년 라벨이 북미를 순회연주할 때 미국 작곡가들에게 “유럽을 모방할 게 아니라 고유의 재즈와 블루스를 의식한 작품을 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조지 거슈윈이 파리에서 라벨을 만나 가르침을 청했을 때도 “당신은 이미 일류 거슈윈이지 않은가? 왜 2류 라벨이 되려 하는가?”라며 거절했다. 거슈윈은 미국적인 음악을 계속 썼고, 라벨도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소나타 등에 재즈와 블루스의 요소를 도입했다.

라벨의 음악에 대해 당대부터 ‘인공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꾸준히 청중을 모으는 그의 음악은 한 땀 한 땀 공들인 장인의 손길에 가깝다. 라벨은 “예술가는 좋은 노동자여야 한다. 기술적인 완성도를 목표로 무한히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라벨의 장인정신에는 이렇게 정직하게 어제보다 나은 하루를 만들어가는 건강함이 있다. 매끄러운 마감 안에 생의 긍정이 따스하게 깃들인 라벨의 음악을 들을 시간이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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