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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이번 계엄 사태를 ‘좋은 위기’로 만들어야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지난주 국회의 대통령 탄핵의결은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판단된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드러난 윤석열 대통령의 상황인식, 행동 양태 등을 보았을 때 하루라도 더 그에게 국가안보와 국정을 맡기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헌법재판소는 명백한 이번 탄핵사유에 대한 심의에서 인용 결정을 하게 되고, 내년 봄 경에는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을 탄핵하여 파면하고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으로 우리는 지난 12월 3일 한밤중에 벌어진 이 엉뚱한 사태의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행동은 어이없었지만 이번 비상계엄령 사태는 단순히 대통령 자리에 있는 한 개인의 일탈이 빚은 한편의 광소극이라 치부해 버리기에는 보다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문제가 그러하듯 이번 사태도 사람, 제도, 문화의 요인들이 겹쳐져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이번 사태에는 여러 얼굴이 있어
사람, 제도, 정치문화가 함께 작용
대통령 탄핵은 하나의 해결책 불과
개헌과 정치문화 개선안 제시돼야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사태는 우리에게 아픈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먼저 정치지도자로서의 성장과 검증, 선출 과정에 대한 것이다. 국가지도자가 되기에는 너무나 편협된 인식과 판단 능력, 충동적 결정 성향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거대 정당이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게 되었으며, 우리 국민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국가지도자로 선출하게 되었는가? 둘째는 국가지배구조에 대한 것이다. 현 제도상 여소야대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둘 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 권력과 국회 권력이 충돌하여 서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무기처럼 상대방 제압을 위해 최대한 휘두르게 될 때 야기되는 극단적 정치대립, 입법교착, 국가 정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셋째는 정치문화에 대한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정치제도를 가진 나라 중에서도 왜 유독 우리에게 더 극단적 여야 간 대치, 보복 정치의 악순환, 대통령들의 불행이 반복되고 있는가? 이번에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성찰 없이 국민과 여야가 단순히 눈앞의 정권 투쟁과 보복 정치에 몰두하려 한다면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이 큰 국가적 비용은 허비되고 말 것이다.

민주주의는 원래 많은 한계와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제도로서 도입한 민주주의는 유리처럼 쉽게 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정부수립 후 여러 번 목도했다. 그것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을 갖춘 국가지배구조, 타협과 절제를 익힌 정치문화, 사실과 지성에 기반한 언론, 깨어있는 시민정신, 포용적 사회문화가 아우러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당혹스러운 정치 현실의 저변에는 이와 관련된 취약점들이 함께 깔려 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 날인 지난 4월 5일 서울 성동구 행당제2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 모든 것을 일거에 개선할 도리는 없다. 그나마 제도적 개선은 빠르게 이룰 수 있는 분야다. 이번 사태가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지적과 권력 분산이 답이란 견해가 많다. 그러나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이 서로 다른 정당에 의해 분점된 것이 이번 사태를 초래한 측면도 있다. 행정권력을 총리와 대통령 간에 나누어 행사해야 한다는 것도 오늘날 개방국가에서 내치와 외치 등 모든 정책이 연결된 상황에서 갈등과 대립, 교착의 소지를 더 키울 수도 있다. 제도 개선은 이념적 접근보다 우리의 역사와 사회적 관습에 대한 성찰과 이에 기반한 실용적 접근을 요한다.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해 여소야대가 될 기회를 줄이고, 대통령의 권력이 여러 자문기구나 심의기구를 통해 정제되고 견제되는 기제를 세우는 것이 더 좋은 방도일 수 있다.

정치문화는 훨씬 더 어려운 부분이다. 민주제도는 우리에게 내생적으로 발전한 제도가 아니라 이식되어 온 제도다. 매사가 정쟁거리가 되는 몰가치적 정치대립과 보복 정치는 권력구조 개편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정당들이 단순히 정권쟁취 목적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와 비전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우리 국민이 지역주의에서 벗어난 투표를 행사해 나갈 때 더 나아질 수 있다. 지역 기반에 따른 ‘묻지마’ 당선은 결국 정당을 국가 미래보다 정권과 이권 쟁취만을 위해 모여든 집단으로 부추기게 된다. 이참에 정당 구성과 정당제도의 개편, 기존의 투쟁적 정치 관행에 덜 젖은 세대로 여의도 정치 주역들의 교체를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이번 사태의 진행을 보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우리 국민의 힘과 시민 정신에 대한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 이제는 정치가 국민의 수준을 따라가야 할 때다. 예상치 않게 일찍 다가온 대선으로 또다시 실패할 대통령을 뽑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은 국가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시간표, 정치문화 개선을 위한 각오와 그의 실현 방안들을 국민에게 제시하길 바란다. 그것이 국가적으로 큰 비용을 치르고 있는 지금의 위기를 허비하지 않고 ‘좋은 위기’로 만드는 길이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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