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이번 계엄 사태를 ‘좋은 위기’로 만들어야
그러나 대통령을 탄핵하여 파면하고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으로 우리는 지난 12월 3일 한밤중에 벌어진 이 엉뚱한 사태의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행동은 어이없었지만 이번 비상계엄령 사태는 단순히 대통령 자리에 있는 한 개인의 일탈이 빚은 한편의 광소극이라 치부해 버리기에는 보다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문제가 그러하듯 이번 사태도 사람, 제도, 문화의 요인들이 겹쳐져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이번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사태는 우리에게 아픈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먼저 정치지도자로서의 성장과 검증, 선출 과정에 대한 것이다. 국가지도자가 되기에는 너무나 편협된 인식과 판단 능력, 충동적 결정 성향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거대 정당이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게 되었으며, 우리 국민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국가지도자로 선출하게 되었는가? 둘째는 국가지배구조에 대한 것이다. 현 제도상 여소야대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둘 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 권력과 국회 권력이 충돌하여 서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무기처럼 상대방 제압을 위해 최대한 휘두르게 될 때 야기되는 극단적 정치대립, 입법교착, 국가 정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셋째는 정치문화에 대한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정치제도를 가진 나라 중에서도 왜 유독 우리에게 더 극단적 여야 간 대치, 보복 정치의 악순환, 대통령들의 불행이 반복되고 있는가? 이번에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성찰 없이 국민과 여야가 단순히 눈앞의 정권 투쟁과 보복 정치에 몰두하려 한다면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이 큰 국가적 비용은 허비되고 말 것이다.
민주주의는 원래 많은 한계와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제도로서 도입한 민주주의는 유리처럼 쉽게 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정부수립 후 여러 번 목도했다. 그것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을 갖춘 국가지배구조, 타협과 절제를 익힌 정치문화, 사실과 지성에 기반한 언론, 깨어있는 시민정신, 포용적 사회문화가 아우러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당혹스러운 정치 현실의 저변에는 이와 관련된 취약점들이 함께 깔려 있다.
정치문화는 훨씬 더 어려운 부분이다. 민주제도는 우리에게 내생적으로 발전한 제도가 아니라 이식되어 온 제도다. 매사가 정쟁거리가 되는 몰가치적 정치대립과 보복 정치는 권력구조 개편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정당들이 단순히 정권쟁취 목적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와 비전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우리 국민이 지역주의에서 벗어난 투표를 행사해 나갈 때 더 나아질 수 있다. 지역 기반에 따른 ‘묻지마’ 당선은 결국 정당을 국가 미래보다 정권과 이권 쟁취만을 위해 모여든 집단으로 부추기게 된다. 이참에 정당 구성과 정당제도의 개편, 기존의 투쟁적 정치 관행에 덜 젖은 세대로 여의도 정치 주역들의 교체를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이번 사태의 진행을 보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우리 국민의 힘과 시민 정신에 대한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 이제는 정치가 국민의 수준을 따라가야 할 때다. 예상치 않게 일찍 다가온 대선으로 또다시 실패할 대통령을 뽑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은 국가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시간표, 정치문화 개선을 위한 각오와 그의 실현 방안들을 국민에게 제시하길 바란다. 그것이 국가적으로 큰 비용을 치르고 있는 지금의 위기를 허비하지 않고 ‘좋은 위기’로 만드는 길이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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