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의 혁신창업의 길] 생명의 근원, RNA 이용해 암·유전병·치매 잡는다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74〉 알지노믹스 이성욱 대표
그래도 K-바이오의 도전은 만만치 않다. 2017년 설립된 알지노믹스는 유전물질인 RNA(리보핵산)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를 연구·개발하는 바이오 스타트업이다. 미국 코넬대에서 RNA 치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성욱(61) 단국대 생명융합공학과 교수가 창업자이면서 대표다. 그는 RNA를 이용해 종양과 유전성 망막색소 변성증, 치매 등의 치료제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특히 간암 및 뇌종양 치료제 후보인 RZ-001은 올 1월과 10월, 각각의 병증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품안전국(FDA)으로부터 임상 진행 및 허가 등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는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지난 9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국가전략기술 보유·관리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 덕분일까. 알지노믹스는 ‘바이오 빙하기’에도 불구하고 최근 마감한 상장 전(프리 IPO) 투자유치에서 203억원을 모으는 등 총 누적 투자가 812억원에 이른다.
궁극의 질병 치료, RNA 치환
Q : RNA 연구자가 왜 험난한 신약 개발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나.
A : “창업에 대한 생각은 미국 유학 때부터 심어졌던 것 같다. 코넬대 의과학 대학원에서 RNA 유전자 분야 박사과정을 했는데, 그곳은 이미 기초과학을 넘어 치료 연구로 넘어가고 있었다.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면 연구에만 그칠 게 아니라, 치료제를 만드는 스타트업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학위를 마치고 1997년 귀국해 20년 이상 연구를 통해 RNA 치환 효소 기술을 최적화해오면서 이걸 이용한 치료제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사명감이 굳어졌다. 그렇게 신약 개발 스타트업의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처음엔 창업을 않고 기술만 이전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끝까지 추진할 기업을 찾기 어려워 직접 창업에 나섰다.”
Q :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인가.
A : “핵심 기술은 RNA 치환 효소 플랫폼이다. 어떤 병을 일으키는 a라는 RNA가 있으면 이것을 우리가 원하는 치료용 RNA로 교체·교정하고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이다. 질병이 되는 바이러스의 RNA를 잘라서 없애고, 여기에 항바이러스 같은 치료용 RNA로 교체한다. 돌연변이로 인한 유전병의 경우는 정상적인 RNA로 바꿀 수 있다. ”
미국 임상에서 패스트트랙 지정
Q : 어떤 질환을 치료할 수 있나.
A : “암과 희귀질환을 중심으로 신약 파이프라인을 개발 중이다. 대표적인 파이프라인은 RZ-001과 RZ-004이다. RZ-001은 간암, 악성 뇌종양 등의 암세포 RNA를 표적으로 삼아 암세포를 사멸시킨다. 암세포가 무한정 증식하는 원인이 되는 효소의 RNA를 잘라 없애고, 동시에 항암 RNA로 교체해 암세포를 죽인다. RZ-004는 유전성 망막색소변성증 치료제다. 돌연변이로 인해 점진적으로 시력을 잃는 희귀 유전 질환을 대상으로 한다. 이외에도 연구·개발 초기이지만 알츠하이머 치료제인 RZ-003도 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교체해 병의 진행을 막고 치료까지 하는 게 목표다.”
Q : 국내외에 RNA 편집 기반 유전자 치료 기업이 없나.
A : “알지노믹스의 RNA 문장 편집 기술은 현재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독보적이다. RNA 속 염기 일부를 교체하는 게 아니라 특정 구간 전체를 바꾸는 거다. 이렇게 하면 여러 가지 돌연변이 염기들을 한꺼번에 정상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 국내에는 우리가 유일하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에 유사한 RNA 교정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등장했지만, 우리 플랫폼은 이미 최적화 단계에 들어섰다.”
Q : 지금 어느 단계인가.
A : “RZ-001은 국내에서 1상 임상을 진행 중이고, 미국에서 2a상 임상 승인도 받은 상태다. 지난해 11월에 미국 FDA로부터 뇌종양에 대한 패스트트랙 지정도 받아 임상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FDA가 나서서 도와줄 테니 빨리 개발해보라는 의미다. RZ-004는 호주에서 임상 1상 승인을 받았다. 호주는 임상 환경이 아주 좋은 나라다. 호주 임상을 가지고 미국 임상으로 가기에도 유리하다. 비밀 유지 조항 때문에 밝힐 수는 없지만, 글로벌 톱 5 수준의 제약회사가 우리 플랫폼을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협상을 하는 중이다. 기술 검증이 이미 끝났다.”
초기 임상 기술이전으로 매출 확보
Q : 상장돼도 매출 내기가 싶지 않은데.
A : “기술특례 상장기업, 특히 긴 기간 임상을 해야 하는 바이오기업의 경우 매출 부족과 손실을 이유로 관리 종목에 지정하는 현재 규정은 가혹하다. 투자자가 기술력을 믿고 계속 투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알지노믹스는 전임상 또는 초기 임상을 마친 후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하는 ‘라이선스 아웃’ 전략으로 매출을 일으키려고 한다. 현재 물질 이전 계약을 통해 다수의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성공하면 본격적인 기술 이전이 이어질 예정이다. 신약 완제품 출시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플랫폼 기술 자체를 바탕으로 다양한 협력과 라이선스 아웃을 통해 매출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Q : 그간에 어려움은 없었나.
A : “바이오 투자 환경은 팬데믹 이후 긴축 기조와 금리 인상으로 더욱 악화했다. 특히 신약 개발 분야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만큼 어려움이 크다. 최근 IPO(기업공개)를 앞둔 마지막 투자 유치로 203억원을 모았다. 더 모으고 싶었지만, 상장을 위해 최소 지분율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이 정도로 그쳐야 했다. 미국 같으면 아마도 10배는 모았을 거다. 임상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큰 비용이 필요한데, 최근 국내 계엄 사태 이후 환율이 치솟아 어려움이 적지 않다.”
◆‘혁신창업의 길’에서 소개하는 스타트업은 ‘혁신창업 대한민국(SNK) 포럼’의 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정합니다. SNK포럼은 중앙일보·서울대·KAIST를 중심으로, 혁신 딥테크(deep-tech)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입니다. 대한민국이 ‘R&D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퍼스트 무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 기반한 기술사업화(창업 또는 기술 이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최준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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