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봉의 시선] 장군들은 왜 ‘노’라고 말하지 못했나
계엄-탄핵 2부작 구성의 이 실시간 역사 드라마는 인기 장르물의 서사 전략에 충실한 것 같다. 개명(開明) 천지에 어떻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보편에 호소하는 상식적인 궁금증이 블랙홀처럼 시청자를, 또 시민을 사로잡는 동력이다.
먼저 대통령.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는 탄식이 줄을 잇는다. 알코올 중독, 그와 관계있을 법한 분노 조절 장애 등이 정치인으로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대통령의 파산을 설명하지만 충분치는 않은 것 같다. 돈키호테 같은 대통령 하나 잘못 뽑으면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는 얘기인가. 이유야 어찌 됐든 우리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데 실패했다. 안심해도 좋을 검증 방법은 없나. 한 중견 출판사 대표는 최근 “보수 성향이긴 하지만 평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원로 지식인 한 분이 부정 선거 음모론에 빠져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대통령이 불법 계엄을 감행했다는 추정이다. 악마화해서는 곤란하겠지만, 대통령과 시국관이 일치하는 일정 규모의 세력을 상상하게 된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조선대 교수)씨의 진단도 비슷했다. “20~30대는 ‘소녀시대’의 노래를 합창하며 새로운 시위 문화를 만들어내는 반면 대통령 주변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싹 쓸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 전혀 동떨어진 시대 감각들이 공존하는 게 한국적 모더니티의 현실”이라고 했다.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가 혼재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 현상이다. 죄과를 희석하자는 게 아니라, 민주화에도 기초체력이라는 게 있다면 우리는 아직 허약하다는 얘기다.
장군들은 왜 그랬을까. 육사 교장을 지낸 박남수 예비역 중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40여 년 전 계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군이 그동안 얼마나 애써왔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 그간의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고 한탄했다.
상명하복에 철저할 수밖에 없는 군 조직의 특수성, 급박했던 계엄의 밤 상황은 정상참작 요소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군들의 계엄 가담에 대한 면죄부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군과 조직 생리가 비슷한 검찰 출신의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계엄 선포 직후 법무부 관련 회의 참석을 거부하고는 사표를 던지지 않았나. 계엄의 불법성에 대한 확신에 그치지 않고 실천에 옮긴 적극적인 항의다.
강원대 평화학과 이동기 교수는 “류혁 감찰관처럼 당장 뛰쳐나가지 못했다 하더라도 계엄이 불법이라고 판단했다면 전출이나 휴가를 신청하는 방식으로 가담을 모면하는 길이 얼마든지 있었다고 본다”고 했다. 결국 정무직으로 분류되는 중장 계급 이상 군 가담자들의 출세욕, 이참에 이득을 누려보겠다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죄과를 엄정하게 밝혀내는 게 수사의 영역이라면 참담한 군 동원 재발을 막는 일은 정치와 제도의 영역일 것이다.
참고로, 독일 연방군은 ‘제복을 입은 시민(Staatsburger in Uniform)’을 지향한다고 한다. 국방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간단히 인터넷 번역기를 돌리는 것만으로 “독일 연방군은 무조건적인 복종을 알지 못한다”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서 군인은 정치적으로 스스로를 교육할 의무가 있다” 등의 원칙들을 확인할 수 있다. 정치 교육이라는 게 정파성 교육이 아니라는 점은 불문가지다. 반대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교육이다. 제복을 입은 군인이지만 시민이기도 하기 때문에, 공동체를 파괴하는 명령에 따르지 않을 권리를 교육한다는 것이다. 끔찍한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립된 원칙이라고 한다. 우리 군에도 그런 교육이 시급하지 않을까. 이번 사태를 보면 비슷한 교육이 있다 하더라도 실효성이 없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박남수 예비역 중장은 “군 간부들을 교육할 때 군의 정치적 중립성 고취는 물론 이번 사태를 케이스 스터디 대상으로 삼아 비슷한 일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외부 위협에 대응하는 무력 집단인 군이 내부에 위협이 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
신준봉([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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