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벼랑 끝에서 다시 날아올라라
개인의 추억이 담긴 날짜뿐 아니라 모두가 기억하는 날이 있다. 물론, 달력에 빨간 글씨로 표시된 공휴일도 있지만, 모두의 기억 속에 공유되는 날들은 대부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들이다. 6·25, 10·26, 5·18, 4·19, 12·12 등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이런 날짜를 떠올릴 때마다 슬픈 현대사의 장면이 되살아나면서 역사적 트라우마로 다가온다.
얼마 전 한국의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으로 인해 모두의 기억 속에 또 하나의 날짜가 새겨졌다. 12·3이라는 숫자다. 12월3일, 국민들은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뉴스에 화들짝 놀랐다. 한국에서 가장 최근에 선포된 계엄이 1979년이었다고 하니, 젊은 세대는 역사책에서만 보던 계엄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다.
계엄령이 선포된 지 2시간여 만에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고,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 6시간 만에 계엄령을 해제하면서 계엄령 선포는 일단락되었지만, 그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며, 해외 언론들의 시선을 끌기에도 충분했다.
계엄 사태를 통해 국민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고, 정치적 판단과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계엄령 선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고, 동원된 군인과 경찰의 정당성을 논하는 등 소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의 비극으로 기억되는 날들은 우리나라가 벼랑 끝에 몰린 날들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 민족은 늠름하게 다시 일어났다. 전쟁의 아픔을 극복했고, 경제적 위기를 넘어섰고, 정치적 혼란마저 수습했다. 시간이 지나면 12월3일도 비극적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겠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벼랑 끝에서 날아오른 날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 국민이 어떤 사람들인가? 굶주림 속에서도 형제자매의 궁핍한 손을 뿌리치지 않았고, 홀몸으로도 넘기 힘든 사선을 넘으면서도 등에 업힌 자식을 내팽개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온갖 괄시와 냉대를 받으면서도 나라를 살리기 위해 중동의 사막에서 구슬땀을 흘렸고, 서독의 탄광에서 검은 먼지와 싸운 사람들이다. 낯선 나라에 맨몸으로 와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일구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다.
12월3일도 그런 날이 될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우리에게는 저력이 있다. 무엇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절대로 뭉쳐질 것 같지 않은 낱알들처럼 보이지만,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마음을 모아 미래를 준비하는 품위를 지닌 놀라운 민족이다.
문화부 장관을 지낸 고 이어령 교수가 나라의 위기를 예견하면서 기도했던 것처럼 ‘비상(非常)에는 비상(飛翔)할 때이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전보다 더 열심히 달려가야 한다. 위기의 벼랑 끝에서 다시 한번 힘차게 날아오르는 자랑스러운 조국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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