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없는 82세 할머니에 또 심폐소생술…이런 연명의료 줄이는 법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을 적용하면 그럴 방법이 없다. CPR도 계속하고, 스스로 호흡을 못 하게 되면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한다. 연명의료를 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A씨는 말기환자이지만 임종환자는 아니다. 연명의료 중단은 임종환자만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A씨가 CPR이나 인공호흡기 치료를 거부하는 뜻을 담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게 없어도 자녀 2명이 '어머니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A씨의 뜻을 전하거나 가족(배우자·자녀) 전원이 연명의료 중단에 합의하면 가능하다. A씨는 이도 저도 아니어서 사각지대에 빠져 있다.
이런 문제가 제기되자 정부가 지난 4월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24~2028)에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기를 말기환자 판정 이전으로, 연명의료 중단 이행 시기를 임종기에서 말기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세부 방안을 연구해 왔고, 중간 결과를 10일 공청회에서 공개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11일 현재 39만 3187명이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존엄사를 택하고 숨졌다. 다만 이 중 80%가량이 막판에 연명 의료 중단을 결정하고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떠밀려 결정하거나 가족이 대신 결정했다. 의료인이 환자에게 미리 설명하지 않거나, 환자나 가족이 이런 걸 두고 소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막판 벼락치기 결정' 상황을 바꾸기 위해 연명의료 중단 이행 시기를 임종기에서 말기로 당기자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연구 책임자인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이일학 교수는 "방치되거나 사각지대에 빠진 환자는 분노에 차 있다. 현행 제도가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팀은 연명의료 중단에 관련된 의사·간호사 21명의 종사자를 심층 인터뷰했다. 대학병원 완화의료센터 7년 차 의사는 "환자가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의식 불명 등)일 경우 임종 과정에 접어들어야 (자녀가 연명의료 중단을) 판단하게 돼 있다"며 미리 대비할 수 없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환자가 스스로 결정할 경우에도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하는 데다 자신의 상태를 이해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종사자들은 연명의료 중단 이행 시기를 말기로 당기는 데 찬성하면서도 말기와 임종기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점을 걱정했다. 대학병원의 신장내과 의사는 "말기의 정의와 시점을 두고 혼동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경제적 약자의 남용 가능성을 우려했다.
연구팀이 23개 의료 관련 학회에 문의했더니 말기 시점 정의가 꽤 달랐다. 암은 대부분 1년으로 잡았다. 전립샘암과 부인암(유방·자궁경부 등)은 2년으로 잡았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1년, 완치 수단이 없는 혈액 질환은 2년, 말기 심부전은 1~3년, 간경변증은 2년, 만성신부전은 5년으로 답했다. 종합하면 암은 1년 또는 1~2년으로 답했고, 비(非)암 질환은 2~5년으로 길게 잡았다. 이날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대부분의 전문가도 질환별 말기 환자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일학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 이행 시기를 말기환자로 당길 경우 그 시점부터 환자를 어떻게 돌볼지 생애말기 돌봄계획을 세우는 게 필수적"이라며 "그래야 환자의 이익과 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은 모든 환자에게 사전돌봄계획을 세우게 돼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환자가 집이든 요양원이든 요양병원이든 간에 어디에서 말기를 보내더라도 통증에 시달리지 않게 진통제의 도움을 받고,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면 응급실에 갈 수 있고, 자원봉사자 등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환자 사정에 맞춰 지역사회에서 돌보는 체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성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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