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밤' 6시간 계엄 희비극 [장세정의 시시각각]
이건 아니다. 아무리 야당 하는 짓이 미워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말 이건 아니다. 상대가 심한 욕설을 내뱉는다고 참지 못하고 버럭 흥분해 냅다 주먹을 휘두르면 방금까지 피해자로 여겨지던 사람이 일순간 가해자로 바뀐다.
헌법학자들에 따르면 '12·3 비상계엄' 선포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주장한 계엄 발동 요건이 헌법에 부합하지 않고, 전시·사변도 아닌데 한밤중에 계엄군이 국회로 밀고 들어간 것은 불법이라 비판한다.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이렇게 쉽게 제한하려는 시도엔 동의하기 어렵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돌연 영사 업무를 중단하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후 독재정권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고 꼬집었다. 오죽하면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인 중국에서 "지난해 상영한 한국 영화 '서울의 봄' 현실판 같다"는 비아냥이 나올까. 주요 7개국(G7) 가입까지 기대되던 선진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민 자존감이 하룻밤에 비민주 저개발국 수준으로 추락했다. 톡톡히 나라를 망신시킨 책임이 무겁다.
국격 떨어뜨린 위헌적 계엄령
정치위기 탈출 '꼼수' 의심 받아
자기희생의 리더십 보여줄 때
9수 끝 늦깎이로 사시를 통과해 검찰총장까지 역임한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설마 법을 몰랐을까. 충암고 동문 연말 송년회도 아닐 텐데, 윤 대통령을 필두로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충암고 동문 3총사'가 둘러앉아 국가 중대사를 졸속으로 다뤘다는 말인가. 그나마 정무적 파장을 판단해 줄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논의에서 벗어나 있었다니 어이가 없다. 5공화국 시절도 아닌데 왜 무책임하게 국무위원들은 계엄 들러리를 섰나.
정말 왜 그랬을까. '서울의 밤'에 벌어진 사태를 찬찬히 복기하면서,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는 대통령의 좁고 빗나간 현실 인식을 가장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일 밤 10시23분 긴급 대국민 담화 발표부터 4일 새벽 4시27분 계엄 해제 발표까지 약 여섯 시간. 윤 대통령은 자못 비장한 표정이었다. 야당의 고위 공직자 탄핵 남발과 예산 삭감에 따른 행정부 마비 시도를 비판하며 윤 대통령은 "헌정 질서를 짓밟고 국가기관을 교란해 내란을 획책한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고 직격했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할 때는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물론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려고 국회를 볼모로 삼는 야당의 극한 정쟁은 비판받아도 싸다. 일부 종북 세력이 대한민국의 질서와 가치를 위협해 온 것도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물이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아직 끓어 넘친 것은 아닌데, 갑자기 냄비를 깬 형국이다.
비상계엄 선언으로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려는 대통령의 조급한 해법도 틀렸다. 헌법에 삼권분립이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입법부와 사법부를 존중해야 마땅하다. 108석의 국회 소수당이 배출한 대통령 눈에는 국정 파행 위기감이 컸겠지만, 국회 전체를 '범죄자 집단의 소굴'로 매도한 것은 의회주의 정신에 어긋난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 선포 배경에 뭔가 다른 의도와 계산이 있는 것 아닌지 꼼수를 의심한다. '김건희 특검' 압력이 임계점에 육박하고, 채 상병 사건의 대통령실 외압 의혹은 여야가 국정조사에 전격 합의했고, 명태균 연루 의혹도 일촉즉발 상황이었다. 모두 대통령 부부를 겨냥한 칼이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을 야당에 떠넘겨 정치적 탈출구를 모색하려고 이 야단법석을 일으켰다는 의심이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남 탓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자기희생의 리더십이 있는 지도자라면 국민이 원하는 가장 소중한 것도 내놓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그것이 높은 자리든지, 어여쁜 사랑이든지. 계엄 선포라는 날카로운 부메랑을 휙 내던진 윤 대통령에게 돌아온 업보(業報)다.
장세정(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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