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부러 '애매한' 중국 제재? 시름 깊어진 삼성·SK하이닉스
애매한 제재? 미국의 셈법
이는 중국 반도체 기업을 고객으로 둔 램리서치‧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등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바이든 행정부에 로비를 펼쳤던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들 기업의 중국 매출 비중은 40%가 넘는다. 제재로 인해 중국에 장비를 팔지 못하게 되면 실적 추락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미 정부를 상대로 ‘필사의 로비’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반도체 제조 장비들이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언뜻 애매해 보이는 미국의 제재 뒤 전략적 포석이 깔려있다는 평가도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등 고성능 반도체와 최종 칩 생산만 확실히 틀어쥐면 된다는 게 미국의 전략”이라며 “레거시(구형) 칩과 반도체 장비를 풀어주면 오히려 중국 반도체 산업이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의 AI 반도체 회사와 장비 업체에 종속될 수 있다는 계산까지 반영된 것”이라 말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며 도쿄일렉트론(TEL)‧네덜란드 ASML 등 미국 이외의 주요 반도체 장비회사 주가가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메모리는 안 막는다
AI를 제외한 시장 전반의 수요가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CXMT와 YMTC(양쯔메모리)가 생산량을 늘리면서 범용 D램‧낸드플래시 가격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29일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11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달보다 20.59% 내린 1.35달러로 올해 가장 낮은 수준이다. 낸드 범용제품(128Gb MLC) 역시 지난달보다 29.8% 떨어졌다.
이미 ‘정해진 미래’가 된 중국 D램 업체의 물량공세를 막아내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모양새다. 앞서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3분기 성적을 낸 삼성전자의 ‘실적 쇼크’ 역시 중국 메모리의 공습 탓이었다. 삼성전자는 실적발표 당일 이례적으로 “중국 메모리 업체의 구형제품 공급 증가로 실적이 하락했다”며 별도 입장을 냈다. 중국의 메모리 추격은 삼성전자는 물론, 고대역폭메모리(HBM) 중심의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비교적 빠르게 갈아탄 SK하이닉스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메모리 반도체의 공세는 한국 입장에서나 골칫거리지, 솔직히 미국에서는 생각만큼 큰 문제가 아닐 것”이라면서 “우리 반도체 업계도 이제는 중국 리스크에서 벗어날 독자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권(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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