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자기 사건의 재판관은 안 된다
근대 인류 문명을 창출한 자유와 평등 가치의 근본 전제인 이 중요한 보편 명제는 셰익스피어는 물론, 법치와 민주공화국과 민주주의가 등장할 때 철학자와 정치사상가, 정치인과 법률가들이 하나같이 깊이 통찰한 준거였다. 거기에는 몽테뉴, 파스칼, 에드워드 쿡, 토머스 홉스, 존 로크, 몽테스키외, 제임스 매디슨, 이마누엘 칸트와 같은 최고 현인들이 포함된다. 그만큼 중차대한 보편 문제였기 때문이다.
일부는 이를 통치의 문제와 관련해 상세히 논의한다. 만약 이 명제가 지켜지지 않아 누구나 자기 사건과 자기 행위의 재판관이 된다면, 내면 윤리이건 외적 행동이건, 나라의 통치이건 규율이건, 문명 이전의 무법상태나 자연상태, 또는 법치 이전의 절대 전제나 초법 통치와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인류가 세습군주 지배에서 시민 자신들에 의한 통치로 넘어올 때, 두 근본 원리에 대해서는 폭넓은 동의가 있었는바, 하나는 평민 대표에 의한 통치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었다. 우리는 전자에 대해선-민주공화국·상식·보통법·의회·보통 시민권이 같은 문제의식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들어-이미 짧게 살펴본 바 있다.(중앙시평 : ‘지금 왜 탈진영 정치가 절실한가?’ 2024년 7월 12일 자)
지금 우리나라는 국가 최고 공직자와 국민대표들이 개인이건 조직이건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되어버린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이라면 근본 전제의 충족으로 인해 존재할 수 없는 현상임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요컨대 민주주의와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의 범주에서 국가 주요 사안들이 처결된다면 사법절차와 재판관의 최종 심판, 즉 고소 고발·수사·재판절차로 넘어가는 정치의 사법화나 검찰화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단계를 훨씬 지났다. 국민 정서나 의식, 국민대표들의 행위는 아래로부터이건 위로부터이건, 파당의 안이건 밖이건, 대화와 타협은 제쳐둔 채 온갖 차원의 상대를 온갖 사법절차와 처벌, 법적 승패와 청산을 통해 제거하려 달려나가고 있다. 개인적 호오를 넘어, 적폐청산의 선두주자가 적폐청산을 주도한 진영의 청산을 위해 반대진영에 의해 선택되는 객관적 현실이다.
국민들은 국가 최고 공직자에 법률가를 선출하고,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와 대표들도 전부 법률가 출신이고, 국정의 주요 직임과 운영은 법률가에 의해 주도되며, 의회의 주요 법안의 찬성과 반대 역시 입법논리가 아니라 사법논리에 의해 지배된다. 자주 강조한, 법의 지배를 넘어 법에 의한 지배, 그리고 끝내는 법률가에 의한 지배를 말한다.
인류 최고 제국의 붕괴를 연구한 고전들이 통찰하듯, 법이 많아지고 나라의 앞에 서게 되면 나라는 위험해진다. 아니, 나라가 이미 위험하다는 징표다. 법이 아니면 굴러가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법률가도 마찬가지이다. 평민과 대표, 정치와 민주주의의 역할이 그만큼 위축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본말이 전도된 이른바 ‘국수그릇 효과’다. 그릇에 국수를 너무 많이 넣고 마구 휘저으면 국수가락들이 한데 뒤엉켜 먹을 수가 없듯, 법을 너무 많이 만들고 마구 휘두르면 똑같아진다. 나라가 온통 법에 짓눌린 채 서로 뒤엉킬 뿐만 아니라,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법적 근거를 누구나 다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법률가 출신 여당 대표와 야당 대표도 자기와 자기 부인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접근한다.
국수그릇 효과의 수렁에 빠지기 전에 삼권분립과 범죄예방과 인권보호를 제외하고는 사법과 검찰을 통한 나라 운영을 대폭 줄여야 한다.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꽉 막힌 물꼬를 터야 한다.
대통령에게 부여된 헌법상의 법률안 재의요구권(대한민국헌법 53조 2항)은 삼권분립의 한 주요 전거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과 자기 가족 사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 채 상병과 대통령 배우자 특검을 말한다. 자기 사건에 대한 사실상의 재판권 행사이기 때문이다. 인치와 법치, 전제정과 공화정의 핵심 분기가 바로 이 점이었음을 거듭 숙고하길 빈다.
사법주의나 검찰주의가 아니라 의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은 반대였다. (둘은 거부권 행사도 0건이었다. 여소야대일 때도 같았다.) 두 대통령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재임 중 최고권력자 자식을 검찰과 법원의 사법 판단에 맡겼다. 자신들은 재판관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대통령 자신과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결단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대통령의 결단은 자신과 나라를 살릴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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