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광양만에는 박태준의 별이 반짝거린다
포항·광양제철 일군 박태준
탄소 찌꺼기 제거 최고 제품
광양제철소는 모양만 멋진 게 아니다. 단일 제철소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 가격경쟁력에서 유리해 경제성을 잘 갖춘 공장이다. 또 여기서 출하되는 제품은 최고 품질을 자랑해 전 세계에 굴러다니는 자동차 10대 중 1대가 광양제철소에서 만든 제품으로 차체를 만들었다. 자동차 차체는 튼튼하면서 가벼워야 해 최상의 품질이어야 하는데, 광양제철소에서 만든 제품은 탄소 찌꺼기를 최대한 제거함으로써 이것이 가능했다. 그러니 현대자동차가 토요타나 폭스바겐과 함께 세계 3대 자동차 메이커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도 광양제철소가 아니면 불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그런데 일관제철소가 세워진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 19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해 70~80년대는 중공업으로 나아가야 했는데 이때 포스코(구 포항제철)가 설립되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때를 놓쳐선 안 되는 것처럼 좋은 제철소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때를 놓치지 않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포항에 제철소를 만든다고 발표했을 때 당시 이르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때 과감히 밀어붙인 게 오히려 적기가 되었다. 물론 일관제철소 건립 계획은 1968년부터 시작되는 제2차 경제개발계획에 포함되었지만 많은 난관 때문에 과연 이뤄낼 수 있을까 모두가 의아해했는데 박태준은 이를 해냈다.
물론 대일청구권자금만으로는 건설비용을 모두 충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건설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기 단축을 시도한 결과 예정보다 빨리 포항제철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공사 기간 단축으로 인한 부실공사는 없었다. 한때 부실공사가 발견되자 80%나 진척된 공사현장을 폭파해 다시 짓도록 한 일이 있어서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삼성전자의 불량 제품들을 모아서 임직원이 보는 앞에서 불태운 것도 박태준의 이런 모습을 본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부족한 자금을 해결하기 위해 한쪽에선 제철소 건설을, 다른 한쪽에선 제품 생산을 병행했다. 그래서 철강제품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 공장을 짓지 않고 후순위 공정인 압연공장을 먼저 세운 뒤 외국서 수입한 반제품을 압연공장에서 가공해 여기서 나온 제품을 우선 판매했다. 그리고 여기서 생긴 여윳돈을 건설 자금에 보탰다. 마침내 제철소의 핵심인 고로(高爐)가 완성되자 반제품을 더 수입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생산한 반제품을 압연공장에 보내 마침내 일관제철소 체제를 완성 시켰다.
덩샤오핑이 제철소 건설 부탁
광양제철소는 광양만을 메워 만들었는데 광양만은 이순신이 노량해전을 벌이다 전사한 곳이다. 이순신이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철수하는 일본군을 단 한 명도 돌려보낼 수 없다는 각오로 죽음을 불사하며 싸웠던 곳이다. 그러니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곳인데 박태준은 여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제철소를 지었다. 그 결과 광양만은 우리보다 철강산업을 훨씬 빨리 일으킨 일본과 서구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든 곳이 되었다. 이것이 19세기에 서구 열강으로부터 받은 조롱과 20세기에 일본으로부터 당한 설움을 씻는 길이 아닐까? 따라서 20세기에 이순신과 같은 사람을 찾으라고 한다면 단연 박태준을 꼽아야 한다.
삼성의 이재용 회장은 박태준이 죽었을 때 ‘스티브 잡스가 IT 업계에 끼친 공로보다 박태준 회장이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이 더 크다’라고 조문록에 썼다. 사실이 그렇다. 그가 적기에 포항제철을 세우지 못했으면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지금의 한국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도 포항제철이 명실공히 국민 기업이 되기 위해 주식을 공모했을 때 그는 한 주도 받지 않았다. 전체 발행주식의 10%가 우리 사주 몫으로 배정되었는데 그중 0.1%만 받았어도 2004년의 주식가 기준으로 150억 원이나 되는 돈이다.
“공적인 일에 사욕 있어선 안 된다”
그가 이렇게 처신한 데는 이유가 있는데 함께 일한 포철 임직원들 앞에서 행한 마지막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공적인 일을 하는데 사욕이 있어선 안 된다. 회사의 종잣돈이 우리 조상들의 피의 대가였던 사실이다. 대일청구권자금. 그 식민지 배상금으로 포항제철 1기를 건설할 수 있었다. 우리의 추억이 포스코의 역사 속에 조국의 현대사 속에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것을 우리 인생의 자부심과 긍지로 간직합시다.” 그는 이처럼 명예를 먹고 산 사람이었는데 광양만에는 이순신과 함께 그의 별이 반짝거리고 있지 않을까?
김정탁 노장사상가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