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의 의학오디세이] 의협을 위한 세레나데
모든 이익단체가 그러하듯 의협은 회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환자 진료와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하지만 회원들은 의협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금의 의정 갈등 상황 속에 지리멸렬한 의협의 모습 때문이다. 사실 의협은 태동부터 조직적 함의를 가져가기가 지난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의협을 구성하고 있는 개원의, 봉직의, 대학교수, 전공의 등은 직역 간, 세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으로는 모든 직역의 현안들을 정책적으로 조율하기도, 만족시키기도 어렵다. 정부와의 대화 창구인 의협과 협상을 진행하여도 직역 간 입장의 차이가 극명한 사안의 경우, 의료계의 합의를 도출 해내기가 난감한 배경이다.
의정 갈등 시마다 많은 이들이 의협의 쇄신 필요성을 주창한다. 의사들의 유일한 법정 단체지만 한정된 인적 자원과 비효율적 운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개원의 중심이라는 비판 속에 의료계의 대표성도 뚜렷하지 않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의료정책을 위상만큼 생산하지도 못했다. 모두가 지쳐가는 의정 갈등 속에 진정한 의료개혁의 주체세력이라는 사회적 평가는 요원하다. 듣기 싫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필수의료 부족이라는 사회적 과제 속에 정부와 의사 간의 진단과 해법은 확연하게 다르다. 현 시기 의협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차별적인 의대 정원 확대가 왜 잘못된 것인지 국민을 설득할 객관적 명분은 확보하고 있었는지 성찰할 일이다. 정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진행된 의대 정원 확대 정책 앞에 선배 의사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전공의 학생들에게 어떠한 헌신을 보여줬는지도 되돌아볼 일이다.
미국의 의사협회는 의료정책 결정에 대한 중요한 이해당사자로서 사회적 위상과 역할을 다하고 있다. 국가의 의료정책은 사전에 숙련과 소통의 과정을 거치며 의사협회의 정치적 영향력은 매우 세다. 미국의 보건 의료정책에서 의사협회의 역할은 회원의 권익과 국민의 건강을 위한 정책을 옹호하고 지지하는데 이를 ‘보건 정치’라 평가해도 과하지 않다. 우리의 현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미국의 의사협회는 의대생에게도 대의원 자격과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의료계의 구성원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 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의대생은 가입이 불가하며 전체 회원 중 약 1만5000명으로 10%에 달하는 전공의들에겐 의협 중앙대의원회 250명의 정수 중 2%만 배정돼 있다. 대의민주주의에 위배된다. 이쯤 되면 전공의들에게서 의협은 자신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올만하다. 의협의 쇄신은 대의원 구성과 선출 방식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의대생들에게도 가입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젊은 의사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국민도 의사도 모두 안다. 대한민국 의료는 거대한 변곡점에 놓여 있다.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공백을 메꾸면서도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 미래지향적 의료정책의 입안을 위해 의협은 연공서열 중심의 구시대적 질서를 탈피해야 한다.
모든 조직이 그러하듯이 자체 정화 능력을 상실하면 외부에 의해 조직의 명운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의료개혁을 위해선 의사협회를 명실상부하게 의사들의 단일한 대표조직이자 의사결정 구조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익적 정책 생산의 주체로 변신하는 것, 나아가 객관화된 데이터로 대정부, 대국민 설득 창구로서 그 기능을 다 하게 하는 것이다. 꼰대 의협 그만하자. 의협을 혁신하면 국민도 의사를 지지한다.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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