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운다고, 옷장에 갇힌 생후 100일 아기…기적의 생존 비결 [아이들의 다잉메시지]
‘3048명의 다잉메시지’를 학습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아동사망검토시스템(NFS-CDRS)이 실제 아동학대 사례를 프로파일링한 결과 보고서를 중앙일보가 최초로 입수했다. 국과수는 아동학대 판단·사례관리 등을 돕기 위해 사망 사건의 ‘학대연관성 분석 의견서’는 수사기관에, 비사망 사건의 경우 ‘보육환경분석 의견서’를 지방자치단체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제공한다.
분석 대상은 ‘부모의 방임’으로 서울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에서 사례관리를 받는 윤이서(가명·8)양 가정이다. 지난달 14일 만난 친부 윤인욱(가명·41)씨는 “치부(恥部)이지만 학대가 줄었으면 마음은 똑같다”며 결과 공개에 동의했다.
아픈 엄마와 생후 100일 옷장 속 갇힌 아이
하지만 3년 만인 지난해 10월 일터 동료와 갈등으로 큰 스트레스를 겪은 어머니 서씨의 병세가 악화했다. 새벽에 퇴근한 윤씨 눈에 난장판이 된 집안 한 켠에 방치된 이서가 눈에 들어왔다. 딸은 시설로 재분리 조치되고 아내는 병원에 강제 입원됐다. 윤씨의 스트레스도 폭발했다. 집을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아 한 달 동안 차에서 먹고 잤다. 윤씨는 “마포대교에서 투신을 시도하려다 이서 얼굴이 떠올라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일곱 살이 된 이서는 시설 생활을 완강히 거부했다. 윤씨 부부도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다시 사례관리를 시작했다. 친모는 약 복용을 재개하고, 아보전의 도움을 받아 집을 깨끗이 치웠다. 법원 가정복귀 심리를 거쳐 지난 8월 이서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서네 경고등 켠 아동학대 프로파일링
중앙일보가 입수한 22페이지 분량의 ‘보육환경분석 의견서’에 따르면, 윤씨 가정의 경우 8개 아동 사망 유형(아동고문~정신병적 살해) 중 ①방임으로 인한 영아 사망 ②모친의 자녀살해 유형과 비슷한 속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과수는 윤씨 가정과 위험 요인이 겹치는 아동사망 사례를 각각 5개씩 명시했다. ①번 유형의 경우 생후 5개월 영아를 키우는 친모(30)가 친부와 갈등을 겪은 뒤 모텔에서 아기와 투숙한 뒤 사망한 사례가 제시됐다. ②번 유형의 경우 조현병과 우울증을 앓던 친모(34)가 아들(2)의 입과 코를 막아 질식사한 사례와 위험 요인이 겹쳤다.
국과수는 “이서의 경우 생후 3개월에 옷장에 갇히는 심각한 방임을 경험했지만 개입이 즉각적으로 이뤄져 기적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며 “특히 친부의 지지적 역할이 아이의 사망을 막은 결정적 보호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친부는 친모의 병시중과 자녀 분리의 아픔에도 가족에 대한 사랑, 책임감, 문제 해결 의지로 이를 이겨내 왔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를 읽은 아버지 윤씨는 “마음이 울컥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해야겠다는 경각심이 든다”고 말했다.
국과수는 지난해부터 지자체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프로파일 분석 결과를 제공하고 있다. 현장 만족도도 높다. 김채영 오산시 아보전 사례관리1팀장은 “지난 6월 한 방임 사례 개입 과정에서 국과수 보육환경분석 의견서를 활용했는데 부모와 아동을 모두 보호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직감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객관적 자료가 있으니까 지자체 학대전담공무원과 협의가 수월했다”고 말했다.
국과수 아동사망검토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수 조사는 아닌 데다, 아동복지 시스템과 연계된 자료는 국과수 권한 밖에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참여한 양경무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은 “법학자, 사회학자, 아동보호전문가, 공학자, 양육자 등 다양한 주체가 머리를 맞대야 더 좋은 예방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근.이수민.이찬규(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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