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부터 '스파이'가 소원…KGB 요원 푸틴, 이런 모습이었다
[제3전선, 정보전쟁] 스파이 출신 푸틴의 정보전
“요원 한 명이 수천 명 구할 수 있다”
기사 제목에 ‘푸틴의 스파이’(Putin’s spy)라고 한 부분도 관심을 끌었다. 러시아의 정보수장들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도 굳이 ‘푸틴의 스파이’라고 한 것은 푸틴이 러시아 스파이들의 실질적 대장이며 러시아의 공격적 정보전이 푸틴의 생각과 지시에 따른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물론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보 기관에서 잔뼈가 굵은 푸틴의 이력을 따라가다 보면 결코 그런 분석과 평가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푸틴 자신도 스파이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2006년 12월 정보의 날 기념식에서 “한번 정보요원은 영원한 정보요원”이라고 말한 데서 그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스파이 경험이 대통령직 수행에 도움이 된다고 수시로 말해 왔고, “정보요원 한 명이 수천 명의 운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동독에서의 스파이 활동이 푸틴의 정보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냉전의 최전방인 동독에서의 실전경험 과정에서 정보전이 국익과 국가안보에 매우 중요함을 체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레스덴 시절 푸틴은 서방의 첨단기술 수집, 드레스덴 공대에 유학중인 외국인 포섭, 동독 정보기관인 슈타지와의 정보협력 등 다양한 활동을 경험했다. 더 중요한 경험은 동독과 소련 연방의 붕괴를 현장에서 지켜본 것이다. 1980년대 후반 국력이 약해진 소련은 동독을 비롯한 동유럽의 소련 이탈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고,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소련 연방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푸틴은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를 양분했던 소련 연방이 무기력하게 해체되는 아픈 과정을 현장 요원으로 지켜봤다. 푸틴은 이를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러시아는 2014년 군사독트린과 2015년 국가안보전략에서 정보전과 사이버전을 공식 전략수단으로 채택했다. 서방에 비해 종합 국력이 열세인 만큼 비용대비 효과가 큰 정보전·사이버전으로 극복하겠다는 속내가 담겨있다. 이처럼 정보전을 안보전략의 중요한 수단으로 격상시킨 것은 푸틴이 스파이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푸틴의 정보전략은 크림반도 합병과정에서 명징하게 드러났다. 2014년 2월 우크라이나에서 친러, 반러 세력이 충돌하자, FSB는 동부와 남부 우크라이나에서 친러 봉기를 유도하고, 이를 핑계로 아무런 표식이 없는 러시아군을 투입해 크림반도를 장악하도록 했다. 이어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의 크림반도 장악을 정당화하는 대규모 여론전을 펼쳤다. 여론정보전이 성과를 보이자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에 관한 주민투표를 붙였고, 기대한 대로 절대적 찬성을 이끌어냈다. 적의 내부혼란을 조성한 뒤 군사·정보 혼합전을 통해 신속한 해결을 도모하는 푸틴식 전략이 크림반도 합병작전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푸틴의 정보전략은 나날이 발전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내부분열까지 도모하는 수준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주로 서방의 개방된 민주주의 제도와 정치체제의 약점을 공격해 내부분열을 증폭시켜 스스로 붕괴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그림자 전쟁이다.
푸틴의 스파이들은 저비용의 사이버,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상대의 정치, 군사, 경제를 공격하는 새로운 정보전을 펼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적극 돕고 있는 폴란드에 대해 최근 러시아 해커들이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시도한 게 대표적 예다.
최근에는 사이버 여론전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영향력 정보전을 선보이고 있다. 선거 민주주의 제도의 약점을 공략해 여론분열을 조장하고, 상황에 맞게 공격목표를 수시로 변경해 상대가 대응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푸틴의 스파이들은 “개방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분열과 혼란을 조성하기 쉬운 것이 우리의 최대 무기”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미국은 경각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에이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지난 5월 러시아의 정보전에 대해 단순히 미국의 분열을 노린 정도가 아니라 미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2013년 발간된 『미스터 푸틴』의 저자이자 서방에서 푸틴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로 평가받는 피오나 힐 전(前) 미 NSC 러시아 국장은 푸틴에 대해 스파이 출신답게 정보전에 능수능란하며, 과거 소련의 정보전이 군사, 외교를 ’지원‘하는 차원이었던 데 비해 오늘날의 러시아 정보전은 (’지원‘을 넘어) 곧 외교정책이자 군사정책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 북 정보 분야 밀착 면밀 주시해야
푸틴의 공격적 정보 활동은 강건너 불이 아니다. 푸틴의 스파이들이 한반도에서도 공격적 정보전을 획책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시해야 한다. 올 3월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국장이 평양을 방문하는 등 러·북 밀착이 정보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푸틴의 스파이들이 선을 넘는 경우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이코노미스트지의 경고는 이 같은 우려를 더욱 증폭시킨다. 당국의 철저한 대비를 기대한다. 정치권도 관계 당국이 잘 대비할 수 있도록 관심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