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의 혁신창업의 길] “힘 조절 못하는 로봇은 위험, 사람 곁으로 올 수 없어”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73〉 에이딘로보틱스 최혁렬·이윤행 대표
이젠 사람 모양의 로봇, 휴머노이드(humanoid) 차례다.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인간형 로봇이 머잖아 자동차 공장에 투입될 태세다. 최근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인공지능(AI)과 결합하면 공상과학(SF) 영화 ‘바이센테니얼맨’(1999)의 가사도우미 로봇 앤드류가 현실로 등장할 판이다.
의외로 어려운 기술, ‘힘 조절’
2019년 11월 설립된 스타트업 에이딘로보틱스는 로봇이 힘 조절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힘토크 센서’를 만드는 회사다. 로봇산업의 핵심 중간 생태계에 자리한 셈이다. 이제 만 네 살에 불과한 스타트업 중 스타트업이지만, 누적 투자 유치가 200억원에 이른다. 직원 36명에 올 한 해 매출 20억원이 예상된다. 투자금을 까먹으면서 미래만 기약하는 스타트업이 아니라는 얘기다. 투자기업 중에는 포스코기술투자와 GS벤처스 같은 대기업 벤처캐피털(CVC)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발굴을 통해 모기업 삼성전자의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역할을 하는 삼성넥스트도 포함돼 있다. 삼성은 ‘휴보 아빠’ 오준호 KAIST 교수가 2011년 창업한 코스닥 상장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인수를 추진 중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넥스트의 에이딘로보틱스 투자는 상징성이 크다.
에이딘로보틱스는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내 ‘로보틱스 이노베토리’ 연구실에서 파생된, 이른바 ‘실험실 창업 기업’이다.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최혁렬(62) 교수와 그의 제자 이윤행(37) 박사가 각자대표를 맡고 있다. 중앙일보 취재진이 최근 경기도 안양에 자리 잡은 에이딘로보틱스를 찾았다.
산업 현장의 문제를 연구 주제로
Q : 어떻게, 왜 창업했나.
A : “보통 교수가 창업을 주도하고, 제자들이 참여하는 형태이지만, 우린 거꾸로였다. 박사과정을 마무리한 이 대표가 어느 날 내 방으로 찾아와 회사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게 시작이었다. 우리 연구실에서 개발한 좋은 기술들을 산업 현장에서 적용하고 싶어했다. 알고 보니 이 대표 외에도 다른 제자들과 이미 뜻을 모은 뒤였다. 직접 나선 창업은 처음이지만, 예전에도 간간이 창업을 해볼까 생각해온 터라 크게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최 교수 연구실의 학풍은 사뭇 다르다. 석·박사 합쳐 100명이 넘는 제자를 배출했는데, 90%가 학계가 아닌 산업계로 갔다. 창업한 제자만 5명이다. 코스닥 상장 로봇 기업 케이엔알시스템의 창업자 류성무 박사가 최 교수의 1호 박사 제자다.)
Q : 강의와 연구, 논문지도만으로도 바쁠 텐데.
A : “뭐, 꾸역꾸역 하고 있다. 창업했다고 강의(연간 12학점 이상)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그래도 제자들이 회사의 실무를 주도하고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 오히려 스타트업이 학교 연구실의 연구 방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기술적 문제에 힌트를 얻어 연구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논문으로 끝나는 연구가 아니라 산업에 직접적으로 응용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큰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 (이런 창업 형태는 국내외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구조다. 교수가 혼자서 스타트업 대표를 겸임할 경우, 업무도 바쁘고 여차하면 돌아갈 곳도 있어 회사에 전념할 수 없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고성능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센서
Q : 에이딘로보틱스만의 기술력이 뭔가.
A : “힘토크 센서 기술에서 독보적인 회사라 자부한다. (팔 모양의) 협동로봇이나 휴머노이드 로봇이 힘을 정밀하게 조절해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정전용량 기반의 ‘힘토크 센서’가 주력 기술이다. 기존 협동로봇 등에도 전류의 저항 기반 센서가 달려있는데, 정밀도가 현격히 떨어진다. 미국과 일본 등 로봇 선진국에 우리처럼 정전용량 기반 힘 센서가 있지만 비싸고 무겁다. 에이딘
(레인보우로보틱스와 두산로보틱스 등 협동로봇을 만드는 국내 로봇 기업들이 에이딘로보틱스의 힘토크 센서를 장착하고 있다. 해외 시장 진출은 미국·중국 등 9개국에 이르지만 이제 시작 단계다. 테슬라 등 미국 주요 로봇 기업들로부터 문의는 오고 있지만, 아직은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10%에 그치고 있다.)
Q : 투자 시장이 안 좋은데, 유치가 어렵지 않았나.
A : “전체 투자시장은 어렵지만 의외로 투자하겠다는 곳이 많았다. 기술의 독창성과 상업적 가능성, 즉 연구 성과가 실질적으로 산업화할 수 있다는 점이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준 거라 생각한다. 삼성넥스트의 경우 미국에 본사가 있는데, 먼저 알아서 찾아와 원화가 아닌 달러로 투자했다.”
Q : 창업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매출이 제법 있다.
A : “멋진 청사진을 보여주면서 투자를 유치하고서는 이후 돈을 다 써버리고 힘들어하는 스타트업이 많다. 우린 애초부터 핵심 기술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고, 그게 매출로 연결되는 프로세스가 있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특히, 다축 힘토크 센서는 가격 대비 높은 성능으로 국내외 다수의 기업과 연구소에 공급하고 있다. 이런 기술력이 초기에 매출을 빠르게 올리는 데 기여했다.”
Q : 상장 계획은.
A : “매출이 100억원은 넘고, 수익구조가 괜찮아질 즈음인 2027년쯤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출 없이 기술력만으로 특례상장을 하고 싶진 않다. 상장 뒤에 수익을 못 올려 어려워하는 회사들을 많이 봐왔다. (코스닥 상장 기업은 연 매출 30억원 미만 등 사유가 발생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지만, 기술특례상장의 경우 매출은 상장한 해를 포함해 5년까지 관리종목 지정이 유예된다.”
◆‘혁신창업의 길’에서 소개하는 스타트업은 ‘혁신창업 대한민국(SNK) 포럼’의 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정합니다. SNK포럼은 중앙일보ㆍ서울대ㆍKAIST를 중심으로, 혁신 딥테크(deep-tech)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입니다. 대한민국이 ‘R&D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퍼스트 무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 기반한 기술사업화(창업 또는 기술 이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최준호(joonho@joongang.co.kr)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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