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공짜 골프는 없다
골프 관련 이야기 하나 더. 아베가 생전에 털어놓은 비화다. "트럼프와의 첫 골프 라운드의 1번 홀 티샷 때 내 인생에서 가장 긴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생 최고의 샷이었다. 230야드. 스코어 91로 트럼프에게 졌지만, 생애 최고의 라운드였다. 트럼프와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데는 20번 식사하는 것보다 골프 한 번이 훨씬 효과적이다" "트럼프는 드라이버도, 우드도 하여간 세게 친다. 거리도 많이 나간다. 그래서 난 화이트 티, 트럼프는 뒤의 골드 티에서 쳤다. 무엇보다 놀란 건 퍼팅 실력. 기가 막혔다. 일단 무조건 홀컵을 지나가게 쳤다. 그러면서 '내 인생과 같다'고 하더라. 일단 강하게 밀고 나가는 그의 성격과 골프 스타일이 똑같더라. 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2 하지만 '골프 외교'에는 대부분 '꼬리표'가 있었다. 라운드 예정 2주 전인 2017년 1월 28일 트럼프가 아베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요즘 워싱턴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이런 날에 골프하는 X은 없다." 순간 아베는 "아, 골프하자는 이야기는 역시 인사치레였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후나바시 요이치, 『숙명의 아이』 13장). 트럼프의 이어지는 말. "하지만 미 남부에 더 좋은 내 골프장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도록! 그건 그렇고, 토요타 자동차가 멕시코에 미국 수출용 승용차를 생산할 용도의 공장을 10억 달러 투자해 건설하겠다고 하던데…. 이거 미국에 건설하는 쪽으로 바꿔 주면 안 되나? 신조가 '미스터 토요타'에게 직접 좀 이야기해 봐."
아베는 엿새 후 토요타 사장과 극비리에 만났다. 그리고 토요타는 "미국에 향후 5년간 1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멕시코 투자액의 무려 10배였다. 2월 10일 정상회담 공동 발표문에도 "(일본 기업이) 미국에서 고용을 100만 명 창출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공짜 골프는 없었다. 아베는 기꺼이 그 돈을 냈다. 골프를 안 했어도 내야 할 돈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3 현 상황을 보면 한·미·일 관계 기상도는 '흐림'이다. 우선 미국. 트럼프는 초반에 확 내 편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동맹이고 뭐고 없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모두 이번에 조기 회동에 실패했다. 트럼프는 바이든처럼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라"고 일본에 촉구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예측 불가다. 2019년 하노이 회담이 결렬됐음에도 김정은에게 "에어포스 원으로 평양에 데려다 줄까?"라고 했던 그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기반도, 지지율도 시원찮은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와 밀당할 재주도, 유연성도 별로 없다. 사실 아베가 트럼프와 가까웠기에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 본능을 적극 막아준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제 일본엔 아베가 없다. 한국은 더하다. 트럼프의 한국에 대한 거리감과 한국의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대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다시 '골프 외교'. 물론 연습도, 준비도 좋지만 그건 결정된 뒤 해도 된다. 아베도 그랬다. 오히려 미스샷을 연발하고 모래로 나자빠지는 '벙커 굴욕' 뒤 트럼프와 더 친해졌다. 골프는 덤이다. 중요한 건 트럼프와 뭘, 어떻게 주고받을지다. 기업들마다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정부 차원의 다른 묘책을 시급히 궁리해야 하지 않나. 어차피 앞으로도 공짜 골프는 없다.
김현기(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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