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의 문화난장] ‘정년이’로 뜬 여성국극, 국가무형유산 되려나
'꽃미남' 남장 배우에 아이돌급 팬덤
여성국극은 판소리를 근간으로 하는 무대예술이다. 여성만 출연해 남장 연기를 펼친다는 것이 창극과의 차별점이다. 1948년 판소리 명창 박록주(1905∼1979)가 만든 여성국악동호회에서 출발했다.
여성국극은 195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전까지 국악 공연은 나이 많은 판소리 명창 중심의 무대였다. 여성국극의 여성 배우들이 연기하는 ‘꽃미남’ 캐릭터는 21세기 아이돌 같은 팬덤을 만들어냈다. 판소리 다섯 바탕에 매여있던 창극과 달리 여성국극은 설화와 역사에 뿌리를 둔 창작극부터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를 번안한 ‘햇님과 달님’, ‘로미오와 줄리엣’ 번안극 ‘청실홍실’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여성 배우가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세계 공연사에 유례없는 일은 아니다. 서양 오페라의 ‘바지 역할(트라베스티)’가 그렇고, 일본의 다카라즈카, 중국의 월극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의 여성국극처럼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나서 쇠락해버린 경우는 흔치 않다.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케루비노는 여전히 바지 역할의 몫이고, 다카라즈카는 일본 공연계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월극은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했다.
여성국극 쇠퇴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1960년대 이후 대중화된 TV와 영화 등 문화 환경의 변화가 꼽히지만, 내부의 한계도 분명 있었다.
무엇보다 남역배우로 이름을 날린 임춘앵(1923∼1975)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컸다. 그가 개인사와 건강 등의 이유로 스타성을 잃으면서 여성국극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스타를 계속 만들어내는 교육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 단위의 수공업적 생산체제로 극단을 운영하며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을 갖지 못했던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상업적 성공 이후 돈벌이를 좇아 단체가 난립하면서 공연의 질도 점차 떨어졌다.
판소리 본질 흐린 저질 통속 취급받아
드라마 ‘정년이’의 원작은 2019∼2022년 연재됐던 동명의 웹툰이다. K컬처의 신동력으로 꼽히는 웹툰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여성국극을 다시 대중 앞에 끄집어냈다는 건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여성국극의 가치는 전통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하게 변주해낸 실험정신과 유연성에 있다. 화려했던 과거의 재현이나 복제에 머무르면 그 의미가 희석된다. 여성국극의 영속성을 찾는 방법이 국가문화유산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좀더 숙고가 필요하다. 드라마 인기에 떠밀려 할 일은 더욱 아니다.
이지영(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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