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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용의 시선] 더 많은 ‘고삼동풍’이 필요하다

손해용 경제부장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고삼동풍’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고려아연·삼천리·동서식품·풍산의 앞글자를 딴 조어(造語)다. 굴지의 대기업은 아니지만, 이들 못지않은 근무여건과 고용 안정성으로 취준생들의 지지를 받는 ‘알짜’ 기업들을 뜻한다. 사업보고서로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와 연봉을 확인할 수 있는 3곳을 살펴보면, 2022년 말을 기준으로 ▶고려아연 12년8개월, 1억249만원 ▶삼천리 16년4개월, 9500만원 ▶풍산 17년6개월, 8300만원 등으로 높은 수준이다. 한때는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에 빗대, ‘신도 모르고 지나치는 직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근무여건 좋은 중견기업 늘리고
항아리형 산업구조로 바꿔야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 해결

고삼동풍 얘기를 꺼낸 것은 ‘일자리 미스매치’에 따른 한국 사회의 청년 실업 문제가 걱정돼서다. 많은 전문가는 근본 원인으로 청년이 원하는 임금 수준과 근로 조건을 갖춘 일자리가 부족한 산업구조를 지적한다.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을 못 찾아 애를 먹고 있지만, 처우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청년층은 어떻게든 대기업 취업에 사활을 건다. 여기에 실패한 젊은이 중 일부는 장기 백수로 전락한다. 고삼동풍처럼 임금, 근로 조건, 성장성 등에서 대기업에 견줄만한 중견기업들이 많아진다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의 청년 일자리 문제는 심각하다. 지난달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5.5%로 전 연령대 평균(2.3%)의 배를 훌쩍 넘는다. 저출산·고령화로 청년층 인구는 줄고 있는데 일자리를 갖지 못한 청년은 되레 늘었다. 특히 2018년까지만 해도 20만 명대였던 ‘그냥 쉬는’ 청년이 지난달에는 41만8000명으로 급증했다. 한창 활기차게 일할 청년들 가운데, 아예 일자리를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이가 5%에 달한다는 건 한국 경제의 미래에 치명적이다.

힘든 일을 꺼리고 대기업만 고집하는 청년층의 직업관을 탓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봉 격차는 20대 1.6배에서 ▶30대 1.9배 ▶40대 2.2배 ▶50대 2.4배로 나이가 들수록 벌어진다. (통계청 ‘2022년 임금근로 일자리 소득 결과’) 어떤 일자리에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결혼·출산, 내집 마련, 자녀 교육, 노후 등이 달라지는 마당에 청년층만 다그칠 순 없는 노릇이다.

‘9988’로 대변되는 한국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대한민국 기업의 99%, 일자리의 88%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상징하는 숫자다. 실제 한국은 소수 대기업이 산업 생태계의 최상단을 차지하고, 수많은 중소기업이 하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호리병 구조다. 호리병 입구가 좁다 보니 청년이 선망하는 일자리 찾기는 바늘구멍이다. 반면 두툼한 하단을 이루고 있는 중소기업은 청년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 ‘일자리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이다.

이를 항아리형으로 바꿔야 한다. 경쟁력을 갖춘 중견기업·중소기업·유니콘벤처 등을 키워 굵은 가슴과 허리를 가진 산업 생태계로 만들자는 것이다. 고삼동풍처럼 우수한 급여·복지·근무환경을 갖춘 중견·중소기업이 늘면, 제2·제3의 고삼동풍으로 흘러들어갈 청년 인재도 많아질 것이다. 이는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에도 지원군이다. 중소기업 생산성, 낙후된 서비스 산업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으로만 높여도 잠재성장률을 연간 0.7~1%포인트 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를 위해선 기업을 옭아매는 각종 규제를 혁파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는 게 우선이다. 적어도 중소기업이 더 성장할 경우 발생하는 추가 규제 부담 때문에 성장을 미루는 ‘피터팬 증후군’은 없애야 한다. 청년 고용 창출, 해외 진출 지원, 연구개발(R&D) 확대 등을 촉진할 정부의 정책·예산 지원도 필요하다. 대-중소기업 간 ‘갑을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혁신적 중소기업들의 활동 공간이 넓어지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청년 일자리 위기는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 청년 실업과 경기 침체의 악순환 고리가 심각하게 맞물려 있어서다. 지금과 같은 미스매치가 심화하면 산업의 이중구조는 더욱 굳어지고, 고용불안·인력난으로 저성장이 고착화한다. 장기적으로는 미래 인적 자원인 청년층을 활용하지 못해 한국 경제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결국 해법은 탄탄한 중견·중소기업을 키워 청년 일자리 창출과 내수시장 활성화라는 양대 축을 동시에 강화하는 것이다. 새로운 산업에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이미 있는 기업들의 질을 높이는 것이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다.





손해용(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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