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려 “흑백요리사도 좋지만…우리 식문화 근본 돌아볼 때”
“80 가까이 평생 소원하던 일이 드디어 벌어졌네요. 어머니(고 황혜성)께서 조선왕실 상궁에게서 궁중음식 전수받으신 걸 내가 이어서 해온 게 50여년인데, 제대로 된 전시로 보여드리게 돼 감개무량합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획전시 ‘궁중음식-공경과 나눔의 밥상’ 언론공개회.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제3대 기능 보유자 한복려(77) 궁중음식문화재단(이하 재단) 이사장이 이 같은 소회를 밝히며 흐뭇하게 전시실을 둘러봤다. 왕실 소반, 그릇, 주방용기, 수라간 현판 등 관련 유물 200여점이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한 이사장이 이끄는 재단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했다.
그가 특히 오래 머문 공간은 1892년(임진년) 고종 즉위 30주년과 41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경복궁에서 열린 잔치를 재현한 상차림 앞이었다. 당시 고종은 9번의 술잔과 총 63가지음식으로 구성된 9번의 안주상(미수·味數)을 받았는데, 이를 재단에서 모형으로 꼼꼼히 재현해 전시해 놨다. 오색으로 층층이 쌓아올린 조림과 전, 다과 차림에서 그날의 흥겨움이 전해진다.
잔칫상과 제례 같은 특별한 의례음식 외에 임금과 왕실 사람들이 일상으로 먹었던 밥상도 재현돼 있다. 일상음식 기록은 많지 않지만 정조(재위 1776~1800)의 화성 행차를 기록한 『원형을묘정리의궤』와 왕이 승하한 뒤 약 3년 간 빈전에 살아있을 때처럼 음식을 올린 기록인 『상식발기』 등이 근거가 된다. 여기에 순종(재위 1907~910)과 순정효황후(1894~1966)을 실제 모셨던 상궁들의 증언을 참고했다.
이 작업을 먼저 시작한 게 어머니 황혜성(1920~2006) 선생이다. 황 선생은 1942년 숙명여자전문학교 조교수 재직 당시 조선왕조의 마지막 주방 상궁이었던 한희순(1889~1972)으로부터 궁중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았다. 그때까진 기억과 구술로만 전해지던 걸 정리해 요리책 『이조궁정요리통고』를 편찬했고 궁중음식을 국가무형유산(옛 무형문화재)에 등재시켰다. 1대 기능 보유자 한희순, 2대 황혜성을 거쳐 1971년부터 전수받기 시작한 큰딸 한 이사장이 3대 보유자다.
“마침 어머니 팔순(1999년)이라 그걸 제자들과 조선조 궁중연회 식으로 풀어봤어요. 음식은 물론이고, 찬품단자(메뉴판)부터 상화(床花,음식에 꽂아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까지 연구하고 재현했죠. 당시 하면서 ‘이건 돈만으로 안되는구나, 효의 선물이구나’ 했어요. 우리 궁중음식이란 게 그런 겁니다.”
이번 전시도 궁중음식의 화려함보다 각 지방에서 진상(進上)된 식재료가 상궁·숙수의 손을 거쳐 수라상으로 오르기까지 과정과 이를 둘러싼 통치 철학을 음미하게끔 구성됐다.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수라상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減膳)에서 임금의 애민과 솔선수범을 되새겨보는 식이다. 한 이사장은 “궁중음식을 기능적 측면만 보지 말고, 우리 음식문화가 어디서 왔는지 그 역사성을 돌아봐야 한다”면서 박물관 측이 이를 ‘공경과 나눔의 정신’으로 잘 구현했다고 흡족해 했다.
“나라의 경쟁력이라는 게 문화로 보여지고 식문화가 가장 접근하기 쉽잖아요. 궁중음식 기록엔 임금이 드신 것부터 맨 아래 군졸·백성들에게 나눠준 것까지 포함돼요. 재료나 기법에 치중하기보다 우리 음식 문화의 근본을 찬찬히 돌아봤으면 합니다.”
전시는 내년 2월2일까지이며 무료. 기획전 개막에 맞춰 전면 개편한 2층 상설전시관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강혜란(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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