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윳빛 액체' 뭐길래…조폭 있던 수상한 병원, 14억 떼돈 벌었다
A의원의 피부관리실 냉장고에는 우윳빛깔의 흰 액체와 주사기가 가득했다. 의원을 찾은 손님이 이 방 침대에 누으면 뒤이어 간호조무사가 들어와 주사나 수액을 놓는다. 주사를 맞고 잠을 잔 뒤에도 정신이 혼미한 경우가 많아 의원 직원은 이들을 부축해 택시를 태우는 게 일이었다. 환각 증세를 보이는 등 문제 상황을 대비해 피부관리실 옆 한켠에는 조직폭력배까지 상주했다. A의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약 7개월간 이같은 방식으로 14억6000만원 상당의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판매했다.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특별수사팀(팀장 김보성 강력범죄수사부장)과 식품의약안전처는 최근 5개월간 의료용 마약류인 프로포폴 불법유통 범죄를 집중 수사해 A의원의 의사·상담실장·간호조무사와 B병원의 사무장 등 7명을 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들 의원에서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받은 중독자 25명도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의료용 마약류인 프로포폴 등을 417회에 걸쳐 중독자에게 주사하는 방식으로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특히 프로포폴 불법 판매와 투악만을 위해 의원을 섭외하고 의사와 상담실장 등이 개입해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기존에는 중독자가 ‘병원 쇼핑’하듯 여러 병·의원을 돌아다니며 프로포폴을 맞고, 병·의원도 피부과 시술 등 의료 목적을 빙자해 투약하는 식으로 프로포폴 불법 투약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엔 의원 내에 별도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중독자만을 대상으로 프로포폴을 판매하는 식의 체계적인 범행이 드러난 것이다.
A 의원은 5명의 직원에 더해 문제 상황을 관리·통제하고 자금을 관리하는 조폭 한 명이 함께 운영했다. 의원을 찾는 손님 중 상당수는 프로포폴 중독자였다. 상담실장은 과거 프로포폴 불법투약 건으로 적발된 의원에서 일했는데, 그때 모아둔 프로포폴 중독자 명단을 활용해 의원 방문 등을 권유하는 방식으로 영업했다. 한 번 의원을 찾은 중독자들을 관리하는 시스템까지 갖췄다.
프로포폴 투약은 간호조무사가 담당했다. 이들도 과거 프로포폴 오남용으로 적발된 의원에서 일하다 A의원으로 넘어온 경우였다. 상담실장이 중독자들에게 받은 대금에 맞춰 투약량을 정하면, 간호조무사들이 피부관리실에서 프로포폴을 투약했다. 돈을 많이 내면 무제한으로 프로포폴을 투약해주기도 했다. 이들은 시간당 투약 대금으로 100만원을 받았다. 한 중독자는 1860만원을 내고 10시간 24분을 맞기도 했다.
프로포폴 불법투약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에는 다른 사람들의 명의를 도용해 이들이 치료용으로 프로포폴을 처방받은 것처럼 허위 보고했다. 의사 면허가 있는 서모씨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NIMS 허위 보고와 더불어 의료용 마약류를 구매하고 결제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씨는 의사 면허를 대여하고 범행을 돕는 대가로 5개월간 약 2억원을 챙겼다.
이들의 범죄는 지난 2월 중앙지검에 신설된 의료용 마약류 전문수사팀이 서울 소재 프로포폴 오남용 의원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덜미가 잡혔다. 수사팀은 이번 범죄에 가담한 간호조무사가 근무했던 병원을 압수수색하고 중독자들을 조사하면서 범죄정보를 확보했다.
의료용 마약류 범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의료인 마약범죄자 수는 2018년 98명에서 지난해 313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올 9월까지 검거된 의료인만 312명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따르면 최근 5년간 프로포폴 중독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14건에 달한다.
검찰 관계자는 “의사에게 마약류 취급 자격을 공인하는 건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라는 것인데, 의료기관에서 버젓이 마약 거래가 이뤄지면 마약이 더 쉽게 퍼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의료용 마약범죄 정보들을 축적하고 수사 전문성을 강화해서 마약으로부터 국민의 신체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석경민(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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