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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의 시시각각] 경제 부진, 변명만 할 건가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8월 29일 국정 브리핑)

윤석열 대통령의 이 말을 기억하는 국민에게 3분기 성장률(0.1%)은 쇼크다. 한국은행 예상치(0.5%)의 5분의 1이다. 이로써 올해 우리 경제는 정부 성장 전망치인 2.6%는 말할 것도 없고, 한은이 예상한 2.4% 성장도 어려워졌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수정할 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한 전직 경제 장관의 코멘트. “성장률 하향이 무슨 의미가 있나. 대책을 내놓아야지.”

성장률 쇼크, 잠재성장률 추락
저출생·고령화 탓 하지 말고
인재 붙잡고 시장 역동성 살려야

경제 전망이야 틀릴 수 있다. 문제는 상황 인식이다. 국책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수 부진’ 판단을 내려온 것이 11개월째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6개월째 “완만한 내수 회복 조짐을 보인다”(월간 경제동향)고 진단해 왔다. 그것이 대통령의 자신감 배경이 됐을 것이다. 그 사이 성장률은 2분기 -0.2%, 3분기 0.1%를 기록했다. 결국 누구 말이 맞나. 이런 상황은 정부가 낙관적 사고에 젖어 있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는다. 진단이 틀리면 올바른 대책이 나올 리 없다.

정부가 믿었던 수출은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3분기 수출 부진(0.4% 감소)도 그렇지만, 10월 1~20일 일평균 수출액이 전년보다 1% 느는 데 그쳤다. 중국은 더 이상 한국 수출의 황금어장이 아니고 반도체도, 자동차도 힘이 떨어지고 있다.

경제가 안 좋으니 세수가 좋을 리 없다. 올해 세수 부족분이 29조6000억원. 그런데도 여권은 금투세 폐지에 사활을 걸고, 유류세 인하 조치를 또 연장했다. 세금 감면이야 달콤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은 국민의 불안감을 높인다.

더 큰 일은 경제의 기초체력인 잠재성장률 추락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올해 2%.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15배나 큰 미국(2.1%)에 추월당했다. 혹자는 세계 최고인 저출생·고령화 탓이라고 한다. 단편적 분석이다. 인구가 줄면 생산성을 높이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쓸 방도를 찾으면 된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우선 인재 유출. 지난해 취업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간 석·박사급 핵심 인재가 1400명 이상으로 추정됐다(한국경제신문 10월 28일자). 게다가 올해 한국을 떠나는 100만 달러 이상 자산가가 1200명에 달할 거라는 영국 컨설팅업체 분석도 있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아도 1조7000억원 이상의 국부가 나가는 셈이다. 인재와 부자가 빠져나가는데 생산성을 어떻게 올리나.

정부와 경제 시스템에 대한 신뢰 저하도 문제다. 예를 들어 올해 시중은행들은 사상 최고 이익을 올리고 있다. 대부분이 이자 수익이다. 금융당국의 관치 아래 예금금리는 떨어지고 대출 금리만 올라갔기 때문이다. 예금자와 대출자의 희생으로 은행만 배를 불리는 셈이다. 부동산 과열을 막겠다는 게 정부 의도지만, 이렇게 경제가 상식과 다르게 움직이면 국민의 ‘경제 의욕’ 자체가 차갑게 식는다.

최근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가 미국 경제가 왜 이렇게 잘나가는지를 분석했다. 광대한 시장, 낮은 수준의 규제, 세계 최고의 대학, 법치주의(rule of law) 등 여러 요소가 소개됐다. 비즈니스 역동성도 있다. 미국은 창업하거나 폐업하는 기업 비율이 20%로 유럽(15%)보다 훨씬 높다. 미국에선 3개월 동안 약 5%의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는 데 비해 이탈리아에선 1년이 걸려야 이 정도 이직률이 나타난다. 사업을 접거나 창업자금을 구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고, 해고도 구직도 수월하다는 것이다. 결국 금융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노동시장이 유연해져야 경쟁력이 강해진다는 얘기다.

성장 부진도, 잠재성장률 하락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해선 안 될 일을 해서 빚어진 결과일 뿐이다. 더욱 개혁이 절실해졌다.



이상렬(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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